6.25 민족상잔, 종전과 독립 그리고 다시 민족상잔

2018.06.25 15:11:44

[IE Info]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으로 남침하며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했다. 민족상잔의 생채기를 깊게 새기며 우리에게는 한국전쟁보다 6.25전쟁으로 불리는 이날. 숫자 세 자리 6.2.5가 우리에게 미치는 심리적 파급은 부정적이지만 다른 나라에 6월 25일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1975년 6월 25일 모잠비크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내항하며 유럽에 알려진 게 비극의 서막이 됐다. 1505년 포르투갈이 세력을 퍼뜨린 것을 시발점 삼아 통치해오다 19세기 말 내륙부에 포르투갈 특허회사가 개발을 시작했다. 1911년 무렵은 포르투갈의 자치식민지였으나 1926년에 직할 식민지가 됐다.

 

이에 굴복하지 않던 모잠비크는 1960년대부터 모잠비크해방전선(FRELIMO, 프렐리모)을 위시해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고 1974년 카네이션혁명을 거쳐 6월 25일을 독립의 날로 만들었다.

 

국기에 AK소총이 그려진 것은 소련과 쿠바 등의 지원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독립 이후 1975년에 유엔과 비동맹회의에 가입했는데 집권여당인 프렐리모리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장기집권체제를 다지고 있다. 프렐리모는 4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데 현재 대통령인 필리페 니우시(54)는 정치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1991년 6월 25일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로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과거 오스트리아 가톨릭-합스부르크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서구 문명권의 영향이 자욱했다. 기타 세르비아 등 그리스정교-오스만튀르크제국의 영향력이 짙었던 동구 문명권의 국가들은 20세기 초 '남(南)슬라브 민족'이라는 기치 아래 하나의 국가를 형성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였으나 세르비아 등은 신 문물을 꺼렸다. 이렇게 엉킨 와중에도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11월 슬로베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왕국과 함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인의 왕국'이라는 이름의 새 나라를 건국했고 이는 1931년 알렉산더 국왕이 유고슬라비아왕국으로 개칭했다.

 

세르비아인들이 패권을 잡은 새 나라에서는 다른 민족들의 불만이 커졌는데 더욱이 1941년 4월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를 침공해 독립국가로 존속한 기간은 10년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침탈을 벗어난 이후에도 계속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인들의 분열이 이어지면서 유고 내전이 발발하게 됐다.



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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