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쳤습니다. 지금은 딱지가 생겼는데 이틀 전 다쳤을 당시엔 출혈이 있었죠. 저는 피를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무서워합니다. 주사도 마찬가지입니다ㅠㅠ
심하지 않은 수준의 혈액공포증(Hemophobia)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적은 양의 피는 괜찮은데 대량 출혈 장면을 접하면 살짝 멍해지기도 합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엔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고요. 이래서 전 의사가 되지 못했나 봅니다
얼마 전엔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Over The Top)에서 '어처구니없는(prosthesis)'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지난 2021년 4월22일 개봉한 15세 이상 관람가의 91분짜리 미스터리 코미디물인데 보기 드물게 푸에르토리코에서 만든 영화라네요.
어릴 때 발생한 사고 탓에 아버지를 잃은 트라우마로 혈액공포증을 앓게 된 보철의료기 제작사 마르코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삼촌의 목숨을 빼앗게 되는데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완전범죄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감출수록 어긋나는 계획으로 인생 최대 난관을 겪는 마르코의 '트라우마 극복 성장기'라는 다른 얘기도 품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네요.
영화의 원제는 (의족·의안·의치 같은) 인공 기관 또는 삽입물이나 보철, 의치를 뜻하는 'prosthesis'였지만 주인공과 관련 깊은 직관적인 제목 대신 '어처구니없는'으로 다른 느낌을 준 우리말 버전이 뭔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일상생활에서 종종 접하는 표현이라 더 정감 있기도 하고요.
오늘 '짜사이'에서는 '어처구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2015년작 베테랑에서 악역인 재벌 3세 조태오가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상황을 비유해 "어이가 없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깁니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조태오가 틀린 얘기를 해도 주위 사람들이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의 안하무인인 인물이라 설정상 일부러 대사에 넣었다는 설명을 했죠.
이처럼 순우리말로 맷돌의 손잡이가 어처구니라고 알게 된 이들이 많습니다. 맷돌을 돌리려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처럼 당황하거나 황당한 때 어처구니가 없다 하고요. 하지만 맷돌의 손잡이는 어처구니가 아니라 맷손이라고 부릅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의미하는데 특히 어이를 단순히 어처구니의 축약이라 짐작하는 경우도 많죠.
여러 문헌에 따르면 '어이'는 '어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국립국어원 측은 아직 추측에 불과하나 어이의 유래로 추측하는 어흐가 처음 발견된 순천김씨묘출토간찰에 '보낼 길히 업거든 어떤 어흐로 보내리'라 적힌 것을 근거로 삼고요.
어흐는 방법, 수단 등의 표현으로 쓰다가 시간이 흘러 변형됐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견해입니다. 조선 시대의 일본어 교본인 첩해신어(捷解新語) 등 과거 사료를 참조하면 '어이'는 19세기부터 찾아볼 수 있고 이전엔 '어히'를 사용했던지라 '어처구니'와 '어이'는 쓰임새가 유사할지언정 같은 단어로는 볼 수 없다는 거죠.
다만 표준어 규정 3장 5절 26항은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면서 '어이'와 '어처구니'를 이 항목에 넣었습니다. 어이와 어처구니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겁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