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뷰] 씁쓸한 표준…10만 원어치의 위로

2025.07.30 17:01:25

이달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단독 이성복 부장판사는 국민 104명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인당 1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비상계엄 조치 탓에 대한민국 국민인 원고들이 공포, 불안, 좌절감, 수치심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고통 내지 손해를 받았을 것이 경험칙상 명백하다는 게 판결 이유였죠.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윤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전일 항소했고 이 소식을 접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강하게 비판하며 오늘,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 글을 올렸습니다.

 

요점을 추리면 '국민의 정신적 고통 내지 손해가 명백하니, 각 10만 원 정도는 충분히 인정되며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를 전부 위헌 위법으로 본 법원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또 '내란수괴가 사과는커녕 항소한 것은 염치와 양심까지 내다버린 처사인데 국민의힘은 이런 자를 어떻게 두둔할 수 있냐'는 질타도 있었고요.

 

가뜩이나 더운 날, 윤 씨가 법원의 배상 판결에 항소했다는 보도로 불쾌지수가 더 높아집니다. 그런데 문득 떠올리니 배상금액 10만 원에 왠지 기시감이 드네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를 막론하고 1인당 10만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은 여럿 있었습니다. 일부만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05년 엔씨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2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일어났고, 대법원은 2009년 5월, 원고 31명에게 1인당 10만 원을 배상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죠. 위자료 청구금액인 50만 원보다는 적지만 10만 원 기준이 판례로 자리 잡는 단초가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12년에는 KT에서 800만 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서울중앙지법이 피해자 2만8000여 명에게 1인당 10만 원씩 배상하라고 2014년에 판결했죠. 그러나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KT의 손을 들어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어 2014년에는 1200여만 명이 넘는 고객 정보가 흘러나갔지만 KT는 실제 발생 피해가 없다면서 별도의 보상책을 발표하지 않아 논란이 컸던 전례로 남았네요.

 

특히나 같은 해엔 카드 3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습니다. 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에서 해당 사고가 터졌고 검찰 수사 결과, 피해고객 추산치는 2000만 명, 유출된 고객정보는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결제 계좌번호, 카드번호 등 20종, 1억 건 이상으로 파악돼 전 국민의 숨이 멎을 정도의 불안감이 번졌었죠.

 

이에 법원은 소송과 엮인 피해 고객 1인당 10만 원씩의 위자료 배상 판결을 했고 각 카드사별로 같은 수준의 판결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2016년에는 인터파크에서 103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렸고 2017년에는 홈플러스가 경품 행사를 통해 수집한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판매한 사실이 발각돼 모두 원고 한 명당 10만 원씩의 법원 배상 판결이 뒤따랐고요.

 

모두 10만 원입니다. 물론 판결 이후 기업들의 항소, 상고로 상급법원들은 다른 판단을 한 경우가 많아 씁쓸함이 더 크지만요. 이처럼 10만 원이 사회·경제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배상의 기준 금액처럼 굳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판례는 유사 손해배상 소송의 기준으로 널리 참고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소액 집단소송이나 정보 유출 사건 등에서 명백한 피해에도 개별 금전적 피해 증명이 어려운 경우, 법원은 1인당 10만 원씩 지급 명령 판결을 내렸고 이 금액이 '최저 위자료'로 상징성을 띠며 관습화한 것이죠.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다223214' 판결을 봐도 여러 사정을 따져 구체적 사건에 따라 개별 판단해 정신적 손해를 입게 된 원고들에게 배상할 위자료를 10만 원으로 정했다는 판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 배상과 관련해서도 피해 규모가 집단적·비물질적이라 실제 손해금액 산정이 어렵다면 국가 재정, 사회 여론, 행정비용 등을 감안해 물의를 인정하면서도 부담은 최소화하는 기준 금액을 10만 원에 맞춘 거고요.

 

이와 함께 규모가 큰 배상액은 국가나 기업 측에서 수긍하지 않고 항소, 상고를 남발할 여지가 큰 만큼 사법 효율성과 수용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절충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0만 원. 책임을 덜기 위한 절충점이라기엔 한없이 알량해 보이는 금액처럼 느껴지네요. 국민이 체감하는 불안과 고통에는 기준도 없는데 위로금은 언제나 같은 액수입니다. 과연 10만 원어치 위로에는 진심이나 담겼을까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정금철 기자 ieeditor@issueedi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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