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월 6일, 현충일이자 망종입니다. 토요일과 겹치지만 하루 더 쉬지 못해 안타까운 분들 많으실 테죠. 달력을 본 후 이게 무슨 망조가 들어 망종이냐고 따지고 싶지만 현충일은 현행법상 대체 공휴일 적용 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정부는 지난 2021년과 2023년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대체 공휴일 적용 대상을 크게 확대했으나 신정인 1월 1일과 현충일은 최종 제외했는데요. 결론만 얘기하자면 조업일수 감소에 따른 산업계 타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현재 토요일이나 일요일, 다른 공휴일과 겹쳤을 때 대체 공휴일이 발생하는 날은 ▲국경일(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명절 및 기념일(설날 연휴, 추석 연휴, 어린이날) ▲종교 기념일(부처님 오신 날, 크리스마스)뿐이고요. 참 알찬 정보지만 '앎?'이 아니라 '이리저리뷰'를 작성하는 중이라 다시 주제 이어가겠습니다.
다른 씨앗을 품은 같고도 다른 망종
올해 현충일과 같은 날인 망종(芒種)은 24절기 가운데 아홉 번째 절기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죠. 한자를 풀면 까끄라기 망(芒)에 씨 종(種)으로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의 씨앗, 그리고 그 씨앗을 다루는 때를 의미합니다. 까끄라기는 벼나 보리의 낟알 끝에 붙은, 가시처럼 깔끄러운 털이고요.
농사 달력에서 망종은 유난히 분주한 절기입니다. 보리는 이맘때 익어 베어야 하고 논에는 모를 내야 하죠. 거두는 일과 심는 일이 같은 며칠 안에 겹쳐 오죽하면 '발등에 오줌 싼다'는 속담을 망종 무렵의 바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전할 정도입니다.
적절한 농사 시기의 중요성을 일컬으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을 경고하는 '망종 전에 보리를 베라'는 속담도 있죠. 망종은 때를 지키면 한 해가 풀리고, 때를 놓치면 한 해가 어그러지는 본질적인 마감의 절기입니다.
'마감'을 언급하니 '끝'이 떠오르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막장(끝장)'이라는 명사까지 뇌리에 스치네요.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의미하기도 해 이래저래 풍기는 이미지가 어둡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가장 험한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종의 원 표현인 망종(亡種)입니다. 망할 망(亡)을 쓰는 이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아주 몹쓸 종자라는 뜻으로, 행실이 아주 못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우리가 가끔 쓰는 '인간 말종'은 이 말에서 온 것으로 어법대로라면 '인간 망종'이 바른 표기죠. 속되게 말해 씨를 뿌리는 망종(芒種)과 씨가 글러먹은 망종(亡種). 흥미로운 건 다음 얘기입니다.
사람을 씨앗으로 부르는 말…때를 놓친다는 것
망종(亡種)에 박힌 종은 사람을 욕할 때 즐겨 쓰는 씨 종(種)입니다. 잡종, 변종, 그리고 표준어 밖의 말종도 그렇거니와 '씨알머리가 없다' '그 집안 씨가 그렇지' '씨가 마르다' 등의 표현도 한 줄기에서 나온 거죠.
특히나 한국어는 사람을 욕할 때 개인이 아니라 종자를 따지듯 소속한 전체를 겨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망종(亡種)을 찾으면 박완서의 1990년 초판 장편소설 '미망'의 한 대목을 인용 문장으로 소개하죠. '쌍것 중엔 아비하고 아들하고 맞담배 피우는 망종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만….'
사람을 핏줄과 씨앗으로 가르는 시선이 그만큼 우리말 깊숙이 배어 있다는 방증인데 이 사고방식은 농경 사회 오랜 습관과 맞닿습니다. 좋은 씨앗을 골라 좋은 땅에 제때 심어야 좋은 수확을 얻는다는 경험을 사람에게 대입하면 사람도 종자로 분류되는 거죠. 망종(亡種)은 그 분류의 맨 끝으로 심어봐야 소용없다고 판정받은 씨앗인 셈입니다.
다만 망이라는 한자는 芒과 亡으로 갈라졌으나 두 단어는 '때'라는 한 가지 관념에서 포개집니다. 망종(芒種)은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절기로 보리를 거두고 모를 내는 그 며칠, 시기를 지키지 못하면 좋은 씨앗도 소용이 없죠.
나쁜 뜻의 망종(亡種)이 가리키는 사람도 실은 처음부터 그릇됐다기보다 사람 노릇을 배우고 고칠 때를 놓친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요? 씨앗 자체가 나쁘다기보다 심을 때를 놓친 씨앗인 것이죠.
6월 6일의 망종은 농부에게 더 늦기 전에 씨를 뿌리라고 다그치는 절기로 까끄라기 곡식에 주어진 올해의 마지막 적기죠. 한 해 농사에 망종이 있듯 사람에게도 늦지 않은 적기를 알리는 때가 있을 겁니다. 믿는 종교는 없지만 성경 전도서 3장 1절(개역개정)의 구절을 인용하고 싶군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