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조력자로 함께 하다가 한도를 남기지 못한 순간 냉철하게 선을 긋는 프로페셔널리티(professionality)의 본보기 마통 선생. 이사 문제로 급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한도 1000만 원인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게 됐습니다. 한도를 모두 소진해 '–1000만 원'이 스마트폰 화면에 찍힌 게 이상하게 개운치 않아 10원을 입금했죠. 화면은 곧 '–999만9990원'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도 소진율도 굳이 따지면 100%에서 99.9999%로 내려갔겠죠. 이제 전 분명 한도를 다 쓴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용평가회사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대한 효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10원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알고 나면 마이너스통장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지실 겁니다. 채점표에 '100%'는 없다 우리나라 개인신용점수는 NICE평가정보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두 개인신용평가회사(CB·Credit Bureau)가 매깁니다. NICE평가정보가 공시한 평가기준을 보면 점수는 상환이력 28.4%, 신용형태 27.5%, 부채수준 24.5%, 신용거래기간 12.3%, 비금융·마이데이터 7.3%로 짜였고요. KCB는 일반고객 기준으로 신용거래형태 38%, 부채수준 24%, 상환이력 21%, 신용거래기간 9%, 비금융·마이데이터 8%를 둡니다. 두 회사 모두 점수의 4분의 1가량을 빚의 규모에 배정했죠. 평가 방향도 비슷합니다. NICE평가정보와 KCB 모두 대출과 보증이 생기거나 늘면 부정적, 갚으면 긍정적으로 반영하죠. 이렇게 보면 10원을 상환한 것도 방향만 놓고 보면 긍정적인 행위지만 문제는 경계선입니다. 두 회사가 공개한 평가기준 설명 어디에도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100% 쓰면 따로 감점하고 얼마를 갚으면 몇 점이 오른다는 등의 기준을 담은 환산표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건 연체에는 공개된 문턱이 있다는 점인데 NICE평가정보는 연체금액 10만 원 미만이거나 연체기간 5영업일 미만인 정보는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KCB는 5영업일 이상, 10만 원 이상 연체부터 평가에 쓰되 8영업일 안에 갚으면 연체 이력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공시했고요. 게다가 대출 심사는 이 점수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행 등 일부 금융사들이 신용카드 발급과 대출 승인, 한도, 금리를 정할 때 CB사 점수와 별개로 자체 신용평점시스템(CSS)을 사용하죠. 같은 점수라도 은행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10원은 이자 9분어치 마이너스통장 이자는 실제 쓴 금액에 하루 단위로 붙습니다. KB국민은행 안내대로라면 하루 이자는 사용금액에 연 이자율을 곱하고 365로 나눠 구합니다. 금리를 연 6%로 가정하면 1000만 원을 다 쓴 사람에게는 하루 1600원 남짓, 한 달이면 5만 원 가까운 이자가 쌓이죠. 1분에 1원 남짓 불어나는 꼴이니, 마음먹고 넣은 10원은 이자 9분어치에 불과합니다. 고비는 어김없이 이자 납입일에 찾아오죠. 카카오뱅크 마이너스통장 상품 안내를 살피면 이자는 매월 납입일에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예금 잔액이 모자라면 대출 한도 안에서 출금됩니다. 한도를 꽉 채운 통장이라면 이자가 나갈 자리가 없죠. 이자를 못 내 한도를 넘기면 그다음 날부터 초과한 금액에 연체이자가 붙고, 미납 상태로 한 달이 지날 경우 대출잔액 전체에 연체이자를 매깁니다. 연체금리는 대출금리에 연 3%포인트를 더한 수준으로 최고 연 15%입니다. 10원을 넣어 단순 계산상 100%를 벗어나도 한 달 뒤 5만 원가량의 이자가 통장을 다시 한도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인 셈입니다. 연체가 길어지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지죠. NICE평가정보는 90일 이상 장기연체 중인 경우 점수가 일반적으로 350점 이하라고 밝혔거든요. 신용점수와 별개로 한도 그 자체도 다음 대출 심사에서는 짐입니다. 금융위원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기준상 마이너스통장 같은 한도대출은 실제 사용액이 아니라 한도금액을 대출총액으로 봅니다. 10원을 넣든 1000만 원을 다 갚든 약정이 있는 한 다음 대출 심사에서는 1000만 원짜리 부채로 잡힐 수 있다는 얘기죠. 어떤 빚을 갚느냐도 점수에 영향을 줍니다. KCB는 대출을 업권과 상품, 금리 수준에 따른 위험도로 나누고 성실하게 갚을 때 저위험대출은 '약간 긍정적', 중위험대출은 '긍정적', 고위험대출은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립니다. 여윳돈이 생겼을 때 고위험에 금리가 높은 빚부터 줄이는 편이 이자나 점수로도 이득인 거죠. 바다 건너 채점표는 '비율'에 주목 한도 대비 사용 비율을 대놓고 따지는 곳도 있는데요. 미국에서 쓰이는 FICO 점수입니다. FICO를 만든 이 나라 신용평가사 페어아이작(Fair Isaac Corporation)은 '갚을 금액' 항목이 일반 소비자 점수의 약 30%이며, 그 안에서 잔액을 한도로 나눈 신용 사용률이 중요 요소라고 설명합니다. 사용률이 높을수록 향후 2년 내 연체 위험이 커진다는 게 이 회사 분석이죠. 미국 신용정보회사 중 한 곳인 익스피리언(Experian)은 사용률을 30% 아래로 유지하라고 권합니다. 다만 이 30%도 넓게 보아 그렇다는 경험칙일 뿐, 선을 넘는 순간 점수가 뚝 떨어지는 스위치는 아니죠. 비율을 정면으로 따지는 미국에서도 관건은 소수점 아래 숫자가 아니라 잔액이 한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인 겁니다. 이번 '앎?'을 작성하며 서두의 -999만9990원이 찍힌 통장이 산수로는 100%에서 벗어났지만 신용평가의 시선이 머무는 숫자는 되돌린 10원이 아니라 아직 빌려 쓰고 있는 999만9990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네요. 그래도 10원을 넣은 마음이 틀린 건 아닙니다. 그 손길이 10만 원, 100만 원으로 이어지면 잔액이 줄고 이자도 함께 내려가면서 신용평가에 잡히는 부채 부담도 조금씩 가벼워질 테죠. 한도까지 쓴 통장이라면 다음 이자만큼은 미리 채우는 것, 그리고 남는 돈으로 금리 높은 빚부터 줄이는 것이 적어도 10원보다는 우수한 처방입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