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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무궁화의 꿈, 사고 없는 삼천리 강산

 

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던 지난해 여름 어느 무렵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찍은 무궁화입니다. 이른 아침에 피어 저녁에 오므라들고, 다음 날 또 새 봉오리가 열리는 무궁화는 하나의 꽃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여름 내내 나무 전체가 꽃을 달죠.

 

꽃송이 하나하나의 수명은 하루인지라 '영원히 피는 꽃'이라는 의미의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아무려면 어떤가요. 하나가 지면 하나가 피어 나무 전체는 여름 내내 꽃을 놓지 않으니 영원무궁 겨레의 얼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국화라는 지위에 다함이 없지 않을까요? 법적으로 지정된 국화가 아니라는 논란 외에도 원산지, 진딧물 이슈 등이 있지만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다함이 없는 꽃의 이름을 가진 무궁화호가 4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지난 1977년 새마을호와 통일호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등열차라는 명칭으로 신설된 후 1984년 열차 등급 개편 때 재명명을 거쳐 무궁화호가 된 이 열차의 역사는 1949년 시작됐죠.

 

당시 호남선 서부해방자호(西部解放者號)가 무궁화호로 개명한 것이 최초였고 한국전쟁 탓에 사라졌다가 35년 만에 부활한 이 열차는 도입 당시 에어컨과 식당차를 갖춘 고급 열차였습니다.

 

그러나 2004년 KTX 개통 이후 장거리 노선에서 점점 밀려났고 차량 노후화도 피하지 못했죠. 한국철도공사는 노후 차량을 동력분산식 EMU-150과 ITX-마음으로 전량 교체해 오는 2028년까지 무궁화호의 여객 운행을 종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퇴장을 앞둔 무궁화호는 유종의 미로 올해 7월 경원선 연천역~백마고지역 구간에 정식 투입한다네요. 사라지기 2년 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에서 새 봉오리를 피우는 셈이니 여러모로 가슴 시린 섭리가 느껴집니다.

 


닿지 않은 그 길로 향하는 마지막


더욱이 오늘은 훗날 무궁화호를 추억할 때 고통스럽게 따라붙을 상처가 생긴 날이라 더욱 기분이 가라앉네요.

 

33년 전 오늘, 1993년 3월 28일 오후 5시30분경.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던 무궁화호 제117열차가 구포역을 약 900m 남겨두고 전복됐습니다. 사고지점 인근에서 삼성종합건설이 한국전력의 고압선 지중화 공사를 진행하며 발파작업을 했는데, 철도법을 어긴 것은 물론 철도청과 협의나 통보 없이 작업을 강행한 거죠.

 

발파 진동과 지하수 유출로 연약한 토사 지반에 동공이 생겼고 잦은 열차 운행 하중을 버티지 못한 선로가 깊이 5m, 너비 15m 규모로 함몰됐습니다. 기관사가 지반 침하 발견 후 비상제동을 걸었지만 제동거리가 모자랐고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2량이 무너진 구덩이로 그만…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라 칭하는 이 악재로 78명이 사망하고 198명이 부상을 당하며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를 넘어서는 대한민국 최악의 철도 참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죠.

 

열차 운행은 37시간 30분간 중단됐고 물적 피해 총 30억6000만 원은 삼성종합건설에 구상됐습니다. 사고 관계자 16명이 구속됐지만 사고 발생 이듬해 대법원은 삼성종합건설 사장과 임원 등 6명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고요. 사고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삼성종합건설은 1996년 삼성물산에 흡수합병돼 이름이 없어졌죠. 법인이 소멸해 책임을 따질 주체 역시 묘연해진 가운데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후 구포참사 사고 구간 바로 아래를 관통하는 부산 도시철도 3호선 시공을 맡게 됩니다.

 


지울 수 없어 사라지지 않는 기억


사고를 내고 이름을 지워 책임을 덮는 행태는 삼성종합건설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최악의 국가 인재 중 하나였지만 지방 대도시의 사고였던 만큼 비교적 세간의 관심에서 빨리 벗어난 케이스는 구포 참사보다 9년 앞선 1984년 12월 2일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주의 주도 보팔에서도 찾을 수 있었죠.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보팔 가스 누출 사고는 미국 화학기업 유니온 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에서 맹독성 가스인 메틸이소시아네이트가 유출돼 초기 사망자만 수천 명에 달하고, 누적 수치로는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입니다.

 

유니온 카바이드는 1989년 인도 정부에 4억7000만 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했지만 이후 인도 현지 자회사를 매각해 발을 빼더니 2001년 다우 케미컬에 합병되며 법인 자체가 소멸했죠.

 

다우 케미컬은 합병 이전 책임은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동안 지금까지도 보팔 공장 부지의 오염은 정화되지 않은 채 주변 주민들의 2세, 3세에게서 기형과 질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성종합건설과 유니온 카바이드 모두 흡수합병이라는 형태로 법인과 함께 사고의 기억을 희석시키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합니다. 무궁화호가 2년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라는 사고명도 바뀌고 희석될까요? 사라져야 할 것은 명칭이 아니라 선행한 악습이어야 합니다.

 

하나의 꽃이 지면 다음 봉오리가 피는 무궁화와 달리 기업과 사고는 피고 지기를 반복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33년 전, 무궁화호 아래 묻힌 78명의 이름은 무궁화처럼 다시 피어야 합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