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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가슴 아픈 붕어, 질식에 맞서다

강원도 인제군 소양호 상류에서 붕어가 죽고 있습니다. 3월 말부터 시작된 폐사는 한 달 가까이 이어져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수천 마리에 이르고 수면 아래 가라앉은 개체까지 합치면 실제 규모는 가늠조차 어렵답니다.

 

다른 물고기는 멀쩡한데 붕어만 몸 주변이 붉게 변하고 비늘은 힘없이 벗겨진 채 하얀 배를 드러내며 죽어나간다네요. 40년 넘게 소양호에서 조업해온 어민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하고요. 

 

통상 4~5월은 붕어잡이 최대 성수기라 수억 원대의 내수면 어업인 손실이 예상되지만,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소양호뿐 아니라 이달 6일에는 경기도 수원시 서호천에서도 메기와 붕어 수십 마리가 떠올랐죠.

 

이곳은 2022년과 2024년에도 같은 구간에서 물고기 집단 폐사가 반복됐지만 지금까지도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던 와중에 유사한 사례가 다시 발생했네요. 물고기는 죽어서 떠오르는데 원인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상황이라니…

 

붕어(魚)의 참극입니다. 그런데 100년 전 오늘, 온 나라를 뒤흔든 다른 붕어도 있습니다.

 


100년 전 이달, 두 갈래의 붕어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를 일기로 붕어(崩御)했습니다. 백성들은 돈화문 앞에서 목 놓아 통곡했고, 망국의 상징이던 황제의 죽음에 일제에 의한 독살설까지 나도는 등 비탄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죠.

 

사흘 뒤인 4월 28일, 보통학교 중퇴 후 일본인 상점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조선인 차별에 이를 갈던 서른 살 청년 송학선이 결단을 내립니다. 진고개(지금 충무로) 고서점에서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본 뒤 총독 암살을 다짐한 송학선은 사진관 근무 중 손에 넣은 양식도 한 자루를 품고 과자 행상으로 위장한 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노렸죠.

 

오후 1시 10분경, 순종의 빈소가 마련된 창덕궁 금호문에서 빠져나온 무개차 한 대를 본 군중 가운데 누군가 사이토 총독이 있다고 수군거리자 송학선은 비호처럼 뛰어올라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망자는 국수회 부회장 다카야마였고 총독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인민회 이사 사토와 이케다는 부상을 입었죠. 재동 쪽으로 피신하려던 송학선을 경찰 수십 명이 추격했지만 저항하던 그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중 겁에 질린 헌병 두 명이 권총을 겨누자 송 의사는 두 팔을 벌리며 외쳤습니다.

 

"오냐, 쏘아 죽여라."

 

머리에 상처를 입고 붙잡히는 순간에도 인근 휘문고보 학생들을 향해 만세를 외치라 소리치던 그에게 일본 판사가 재판정에서 "피고는 어떤 주의자인가? 사상가인가?" 묻자 의연했던 송 의사의 답변.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송 의사는 1927년 5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서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비록 오인으로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혈혈단신 필부의 단독 의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은 커졌고 금호문 의거는 한 달 반 뒤인 6·10 만세운동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됐죠.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대에 올라서는 순간까지도 태연하면서도 당당했던 그의 마지막은 일제 앞에서 실로 진정한 붕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 같은 질식, 생명의 호흡


수문을 닫아 물을 가두면 흐름이 멈추고, 흐름이 멈추면 산소가 사라지죠. 침전물이 쌓여 수질이 악화하면 견디지 못하는 개체부터 배를 드러냅니다. 2026년의 붕어는 아직 원인조차 특정하지 못한 환경 탓에 죽어갑니다. 산소 부족인지, 수질 악화인지, 질병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숨통을 막는 조건이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죠. 

 

100년 전 조선도 그랬습니다. 일제는 경계를 닫고 자유를 막아 숨통을 조였습니다. 일본인 상점에서 멸시를 당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버텼던 송 의사도 억압에 질식해 광복의 숨구멍을 찾았을 겁니다.

 

신문에 실린 흐릿한 사진 한 장으로 총독의 얼굴을 파악하고 거사를 위한 양식도 한 자루를 챙긴 채 과자 행상이 돼 궁 앞에 섰던 송 의사의 오인 공격은 어쩌면 시대가 만든 필연이 아니었을까요?

 

다시 물고기의 죽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죽음의 구조는 닮았기 때문이죠. 환경이 숨을 조이면 가장 취약한 존재부터 쓰러진다는 것, 그리고 그 환경을 만든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 이때 만행을 저지르던 일제의 존재들을 사람으로 봐야하는지 순간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글 전개를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사람으로 칭해야겠습니다

 

소양호의 수문을 누가 닫았는지, 서호천의 오수가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으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건 대응 부재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과거 송 의사는 일제에 칼을 들고 맞설 용기와 의지가 있었지만 물속 붕어는 죽어 떠오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을 테죠.

 

정확히 100년 전 오늘, 금호문 앞에서 칼을 휘두른 청년이 재판장에서 남긴 말은 "총독을 죽이지 못한 것이 저승에 가면서도 한이 된다"였습니다. 송 의사의 한은 결국 광복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내리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양호와 서호천에서 원인 불명 떼죽음을 당하는 붕어들의 한은 100년 뒤 어떤 형태로 돌아올까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