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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QS, 제 몫을 하고 있습니까?①

올해도 한국 프로야구 열기가 마그마급입니다. 재작년 사상 최초 천만 관중 돌파에 이어 지난해는 1200만 관중을 넘어섰고 올해 관중 동원 초반 기세는 더욱 거셉니다.

 

이런 와중에 2026 한국야구위원회(KBO)리그 첫 월간 MVP 후보로 총 8명의 선수가 선정됐는데요. 3~4월 월간 후보들은 투수 부문 ▲LG 라클란 웰스·유영찬 ▲삼성 아리엘 후라도 ▲KIA 애덤 올러가와 야수 부문에서 ▲한화 요나단 페라자 ▲SSG 박성한 ▲삼성 류지혁 ▲KIA 김도영입니다.

 

저는 이 가운데 아시아쿼터로 합류한 LG 트윈스의 라클란 웰스를 눈여겨보고 있죠. MVP 후보 선정 기간에 5경기 선발 등판해 2승을 따내는 동안 8일 NC 다이노스 전을 제외한 4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QS, Quality Start)를 기록했습니다.

 

이닝 소화와 함께 평균자책점도 1.16으로 이 부문 리그 1위를 찍으며 유독 볼펜 투수들이 혹사당하는 요즘 선발의 미덕을 더욱 빛내고 있죠. 특히나 선발로 제 역할을 했다는 방증인 퀄리티스타트는 투구능력을 종합한 성적표와도 같아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입니다.

 

 

6이닝 이상 던지면서 자책점을 3점 이하로 억제했을 때 부여되는 이 기록은 지난 1985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스포츠 기자 존 로(John Lowe)가 고안했죠. 당시 9이닝 전체를 다 소화하는 완투가 줄고 투수들이 분담하는 역할이 변하던 시기에 감독들은 선발투수가 6이닝은 책임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고 존 로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존 로는 퀄리티스타트에 대해 '투수가 제 몫을 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고요. 이 문장의 핵심은 '제 몫'으로 퀄리티스타트는 승리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투수가 퀄리티스타트로 마운드를 내려와도 타선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패전투수가 될 수도 있죠.

 

경기 승패는 과정이 만드는 인과와 맥을 따르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퀄리티스타트는 승패라는 결과를 걷어낸 채 오직 과정의 질만 들여다보는 지표로, 근래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보고 듣는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수치화한 것일 테고요.

 


야구장 바깥의 퀄리티스타트


용어만 다를 뿐 퀄리트스타트는 우리 사회 곳곳에 닮은 구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2001년부터 시행 중인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를 언급할 수 있죠. 

 

병원이 환자를 진료한 뒤 청구하는 진료비가 적정한지, 의료 서비스의 질이 일정 수준 이상인지를 따지는 제도로 수술 전 예방적 항생제 사용, 급성심근경색 치료, 뇌졸중 대응 등 여러 항목에 걸친 평가 후 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가감합니다.

 

일정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병원의 기준선으로 잘한 병원은 인센티브를 주고 미흡한 병원에는 삭감 조치가 뒤따르는 동시에 부당 청구 적발 시 환수와 행정처분까지 이어지고요.

 

건설업에서는 건설산업기본법으로 기준을 잡습니다. 시공 품질에 대한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영업정지라는 제재를 가하죠. 영업정지 기간에는 신규 수주를 전면 차단하고 처분 이전 체결한 기존 공사만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 영역에서는 법이 직접 제 몫을 정의하죠. 상법 제382조 제2항은 회사와 이사의 관계를 위임에 관한 규정으로 본다고 못 박았고,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시했습니다.

 

이사는 회사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니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기울여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른바 선관주의의무로,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 하면 동법 제399조에 의거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죠.

 

이사회 의결 없이 독단적으로 중대한 계약을 맺은 공기업 임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계열사 부실대출을 방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금융기관 임원에게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 판례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까지 확장되며 기준이 높아졌죠.

 


숫자로 재는 퀄리티스타트


역시나 이름은 다르지만 투자의 세계에도 퀄리티스타트가 있습니다. 196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윌리엄 샤프(William Sharpe) 교수는 펀드매니저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을 거뒀는지, 아니면 시장을 보는 실력에 기인한 것인지 가리는 지표를 만들었죠.

 

위험 한 단위당 얼마만큼 초과 수익을 올렸는가를 측정하는 샤프 비율(Sharpe Ratio)은 수익률이라는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수익을 만든 과정의 효율성을 따집니다. 예를 들어 펀드 A가 연 12%, 펀드 B는 10%의 수익률을 시현했더라도 A가 수익을 내고자 훨씬 위험한 자산에 투자했다면 가치를 다르게 두는 거죠.

 

무위험 수익률이 5%이고, A의 수익률 변동성(표준편차)이 10%, B의 변동성이 5%라면, 위험 대비 수익의 효율은 B가 높습니다. A의 샤프 비율은 0.7, B는 1.0으로 B가 더 적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더 안정적인 초과 수익을 올린 셈이죠.

 

샤프 비율 산출 공식은 (수익률-무위험 수익률)÷수익률의 표준편차이므로 A는 (12%-5%)÷10%=0.7, B는 (10%-5%)÷5%=1.0이 나옵니다. 샤프 비율이 1 이상이면 양호한 투자, 0 이하면 투자 고려 대상에서 빠진다는 게 통상적인 기준이고요. 하지만 요즘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큰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91세 고령의 윌리엄 샤프 교수가 통탄할 듯합니다

 

야구의 퀄리티스타트, 의료의 적정성 평가, 건설의 시공 품질 기준, 상법의 선관주의의무, 투자의 샤프 비율 모두 결과가 아닌 과정에 기준선을 긋습니다. 선 위와 아래로 구분하는 승리나 수익이라는 최종 결과물에 집중하지 않고, 이르는 과정이 최소한의 품질을 갖췄는지 따지는 것.

 

존 로가 퀄리티스타트라는 기준을 만든 것은 선발투수가 제 몫을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준은 신뢰를 만들죠. 그리고 신뢰는 곧 제 몫을 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이고요. 왠지 우로보로스(οὐροβόρος, Ouroboros)가 연상되는 문장이지만 세상사 꼭 끝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기준은 있되 페널티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퀄리티스타트를 찍지 못해도 계속 선발 등판이 보장되는 기이한 리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합니다. 이 얘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하죠.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