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지난해를 지금으로부터 아득하게 보내기 전 성산대교에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양 어깨 옆으로 길고 파랗게 펼쳐진 풍경을 배경 삼아 시원스레 도로를 내달리는 택시 안에서 지독하게도 기대를 저버린 한 해를 날리듯 보내려던 심경을 담으려 했었나 봅니다.

아직 남은 이달도 제겐 대체적으로 답답한 흐름이었습니다. 달리는 차 창문을 연 채 바람을 맞으며 머릿속까지 환기를 하고 싶네요. 이처럼 달리는 그 자체의 용도로 인간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하는 자동차가 며칠 전, 용도에 맞지 않게 쓰인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에서 50대 남성 A씨가 약 1년간 교제하던 여성 B씨를 자신의 차량에 태운 뒤 내리지 못하게 한 혐의로 구속됐죠. B씨가 이별을 통보한 것이 발단이었고요.
A씨는 B씨의 직장 근처에서 차에 태운 뒤 협박하며 내리지 못하게 했고 B씨 동생의 신고로 노원역 인근을 지나다가 25분 만에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16일 A씨를 스토킹 처벌법 위반, 감금,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했죠.
달리는 차는 속도가 붙을수록 더욱 견고한 감옥이 됩니다. 감정이 닳아 갈라지고 생각이 달라 틀어진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차를 달려 상대를 가둔 게 이 사건의 본질이고요.
이처럼 납치·감금 범죄의 상당수는 자동차 안에서 벌어지지만 애초에 감금의 공포는 멈춘 공간에서 시작됐죠. 역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감금 사건들이 있었고 오늘은 그 아픔 중 하나와 맞닿는 날입니다.
125년 전 오늘인 1901년 5월 23일,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프랑스 중서부 지역 푸아티에의 검찰총장 사무실에 익명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모니에 부인의 저택에 한 여성이 25년째 자신의 오물 더미 위에서 반쯤 굶주린 채 갇혀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죠.
같은 날 오후, 모니에 가문의 저택을 급습한 경찰은 2층 다락방 문을 열어 악취와 어둠, 그리고 벌레들 사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52세 여성 블랑시 모니에(Blanche Monnier)를 발견했습니다. 25년 전 아름다운 사교계 여성이었던 블랑시 모니에는 극도로 쇠약한 상태였고 언론은 그를 '푸아티에의 살아있는 해골'이라 칭했죠.
감금의 이유도 공분을 유발합니다. 1876년, 체면을 중시한 명문 부르주아 가문에서 자란 스물일곱의 블랑시는 가족에게 가난하고 나이 많은 공화주의자 변호사와의 결혼을 선언했죠. 어머니 루이즈 모니에는 당연하게도 격렬히 반대했고, 딸을 집안 다락방에 가뒀습니다.
햇빛과 환기는커녕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그 방에 갇힌 동안 블랑시가 사랑했던 변호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감금은 계속됐죠. 자식이 사랑하던 사람은 1885년 고통 속에 눈을 감았지만 굴레의 형태로 변한 감금은 25년째 이어진 겁니다.
어머니 루이즈는 체포 15일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공범인 오빠 마르셀은 재판에서 15개월 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가 됐는데요. 당시 프랑스에는 구호의무를 규정한 법률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출 후 조현병,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노출증 등의 진단을 받은 블랑시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13년 64세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망가진 정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아 일관된 문장을 구성할 수 없었으며 강한 빛에 대한 극심한 혐오도 평생 지속됐다고 합니다.
긴 세월의 감금이 자유뿐 아니라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마저 박살낸 탓에 정신병원에서 짧은 여생을 마치기 전까지 한 번도 바깥세상과 어울리지 못했다니…
감금은 대한민국 형법 제276조에 명시된 범죄입니다. 사람을 감금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고, 277조의 중감금은 7년의 징역까지 처벌 수위가 올라가죠. 감금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고요.
짧은 시간이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자유를 제한한 이상 감금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달리는 차에 가둔 50대 남성과 다락방에 딸을 25년간 가둔 프랑스의 어머니에게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바꿀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을 놓지 못했다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잡아두면 그것은 사랑도 보호도 아닌 감금입니다. 가질 수 없는 것에는 미련조차 없어야 합니다. 오늘도 도로 위 수많은 운전자들이 같은 뜻을 가진 동승자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 자유롭게 달리기를 바랍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