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樂)덕(후)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앨범 소개] 스물다섯 번째는 2008년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호기롭게 모였으나 여섯 해 동안 EP 두 장, 미증유 같은 발자취를 남기고 해체한 메탈·데스코어 밴드 Upon A Red Sky(어폰 어 레드 스카이)의 마지막 작품 'Aegis'.
앨범명 '아이기스 또는 이지스(Aegis)'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아테나가 들었던 신의 방패로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절대 방어의 상징이죠.
고대 서사를 20분 남짓 일곱 곡에 담아낸 다섯 청년은 보컬 담당 크리스 브리치(Chris Breetzi), 기타리스트 미카엘 콘 카르네(Michael Con Carne)와 미카엘 린도르퍼(Michael Lindorfer), 베이시스트 크리스토프 비흘러(Christoph Bichler), 드러머 마니 마이어(Mani Mayer)입니다.
지난 2008년 결성 이래 2012년 2월 첫 EP 'In a Crisis'를 발매하며 데스코어 씬에 통성명 후 2년이 지난 2014년 5월 4일, 두 번째이자 마지막 EP 'Aegis'를 내놓고 같은 해 각자의 갈 길로 떠났죠.
밴드 차원의 공식 발표 등 해체 사유를 알린 적이 없는 걸로 미뤄 보면 소속 레이블 없이 언더그라운드 독립 밴드였던 이들은 정규 앨범 자체 제작과 활동에 한계를 느꼈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수순으로 자연스레 활동을 마무리했을 테고요.
이 앨범의 최강 무기인 보컬의 크리스 브리치는 멜로딕 메탈코어 밴드 Kill The Lycan(킬 더 라이칸)의 프론트맨으로 무대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유튜브 채널 'VokillCovers' 운영 및 전문 교육 플랫폼 'Vokill Academy' 설립 등 전문 보컬 코치의 입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인체 내부에 진동을 울리는 듯한 낮은 그로울링과 고음 스크리밍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량은 앨범 길이와 상관없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죠. 두 기타리스트 콘 카르네와 린도르퍼의 기타 워크는 다운튜닝 팜 뮤트 리프로 중압감을 깔면서도 멜로딕한 리드 패시지를 사이사이에 끼워 곡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전환합니다.
군웅할거 시대 병사들의 이동을 타격감으로 묘사한 것 같은 마니 마이어의 드러밍과 베이스 기본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듯 전체적인 균형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크리스토프 비흘러의 능력도 칭찬받아 마땅하고요.
트랙명에서 그리스 신화의 방패와 고대 그리스 지명 아르카디아(Arcadian Grounds)가 직접 등장하는 등 전쟁 서사의 보편적 주제를 다룬 앨범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언더 밴드의 한계 탓에 일부를 제외한 전체 곡의 가사는 파악하지 못해 자못 아쉽습니다.
인트로와 인터루드를 포함한 일곱 곡, 총 재생시간 약 20분의 짧은 전쟁을 트랙별로 살피며 이번 편 마칩니다. 유튜브로 연결되는 곡은 본 앨범에서 가장 선호하는 3번 트랙 'Arcadian Grounds'입니다. 게다가 가사까지 포함됐답니다ㄷㄷ
인트로 트랙 'In Ancient Times'는 앰비언트와 오케스트럴 샘플이 고대의 전운(戰雲)을 암시하며 전쟁 전야의 고요함으로 서사의 시작을 알리죠.
두 번째 곡 'Path Of A King'은 정적을 깨고 출발을 이끄는 보컬의 저음 그로울링과 고음 스크리밍 교차와 맞물려 다운튜닝 기타의 팜 뮤트 리프가 곡의 무게를 맞춥니다. 초반부 이후 브레이크다운은 결전에 이르기 전 숨을 다지는 결의를 표현하기에 참으로 시의적절하네요. 제목 '왕의 길'에 나서기 전 과거의 고난을 그린 곡으로 순탄치 않을 미래를 암시합니다.
3번 트랙 'Arcadian Grounds'는 멜로딕한 기타 패시지에서 브레이크다운 전환 낙차가 뚜렷한 곡인데요. 저음역 오픈 스트링 중심의 깔고 가는 슬러지 리프에 바운시한 그루브 구간을 얹어 다채로운 느낌을 더합니다. 폭우에 맞서며 그리스 영토에 발을 디딘 페르시아 군대와 첫 전투에 직면한 스파르타인들의 감정이 녹아납니다.
블래스트 비트와 더블 베이스의 직선적 질주가 곡의 주를 이루는 다음 곡 'Bloodrush'는 어둠 속에서 대열을 이뤄 나아가는 병사들의 이미지를 담았죠.
전투의 광기와 피에 굶주린 전사들의 본능을 밴드만의 개성으로 거칠게 표현했고. 핏빛 전장을 향해 저돌적으로 진군하는 표현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다른 곡들에 비해 단조롭지만 영화 '300'에 나오는 불멸의 군대와의 전투를 기억한다면 곡 구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 트랙 'Thoughts Of Home'은 앞뒤 트랙의 헤비니스와 의도적으로 대비시킨 구간으로 전장의 맹공 사이에 숨을 고르게 하죠. 전투 서사 중간에 병사들의 지친 내면을 살피는 감상이랄까요?
전장에 재진입하는 6번 트랙 'Exiled'는 추방자의 분노를 주제 삼아 공격성을 끌어올리며 격렬한 마무리를 시작합니다. 매끈한 말의 격하지 않은 뜀박질처럼 템포를 높이는 전개를 지속하며 독백이나 방백으로 봐도 좋을 정도의 보컬까지 가미해 전체 곡 중 가장 이색적이죠. 300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배신자 에피알테스의 추방과 증오의 심상이 곡을 채웁니다.
마지막 트랙 'Allegiance'는 충성과 맹세를 뜻하는 제목답게 인트로 빌드업부터 진중합니다. 멜로딕 패시지를 거쳐 최종 브레이크다운까지 기승전결을 갖추고 넓은 보컬 레인지를 위시해 다섯 뮤지션이 보유한 모든 역량을 집중하죠. 모든 것을 쥐어짜고 전장을 떠난 밴드의 최후가 곡의 제목과 겹쳐지네요.
곡 말미 사운드가 천천히 고요에 묻힐 때 폭우 같은 화살 세례에 목숨을 잃으면서도 고고함을 잃지 않는 레오니다스의 실루엣이 오버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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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ncient Times 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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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