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 지나고 이제 일주일 후면 중복입니다. 지난 복날에 삼계탕집과 냉면집 앞에 줄이 길게도 늘어섰죠. 기다린 보람이었는지 한 사발 냉면의 이 시린 육수를 속 시원하게 들이켰는데 며칠이 지나 냉면이 원래는 한겨울 먹던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했습니다.
우리가 '원래 그런 음식'이라 여겼던 것들 중 냉면처럼 뒷머리를 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거 아시나요?
온돌방에서 손 떨며 먹던 겨울 별미 '냉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다국어포털 코리아넷 등을 참고하면 냉면은 현재 여름 대표 음식이지만 고향은 한겨울입니다. 면의 재료인 메밀은 늦가을에 수확했고 국물의 뼈대인 동치미 무도 겨울이 제철이었죠.
무엇보다 냉장기술이 없던 시절, 얼음과 찬물은 여름에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는 아예 냉면을 음력 11월, 동짓달의 시식으로 꼽았고요. 추운 겨울, 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 국수를 먹는 이냉치냉이 냉면의 원형으로 이것이 여름 음식이 된 건 20세기 들어 제빙·냉장 기술이 퍼진 뒤의 일입니다.
씹는 게 아니라 마시던 쓴 음료 '초콜릿'
달콤하게 씹어 먹는 지금의 초콜릿을 떠올리면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카카오는 3000년 넘게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2007년 미국·영국 연구진이 올멕 유적 토기에서 카카오 특유의 성분을 검출해 기원전 1100년경 카카오 음료 소비를 확인했을 만큼 뿌리가 깊죠.
미국 교육재단 스미소니언 협회의 스미소니언 매거진 등을 보면 중앙아메리카 올멕과 마야,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를 갈아 물, 고추, 옥수수가루를 섞은 거품 나는 쓴 음료로 마셨습니다.
오늘날 ‘초콜릿’의 어원으로 거론되는 아즈텍 계통 나우아틀어 ‘쇼콜라틀(xocolatl)’에는 흔히 ‘쓴 물’ 정도의 풀이가 따르죠. 16세기 유럽에 건너간 뒤 설탕을 만나며 달아졌지만 그때도 여전히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고체 초콜릿 바가 등장한 건 1847년, 영국의 사업가 조지프 프라이(Joseph Fry)가 코코아버터를 다시 섞어 굳히는 법을 찾아낸 뒤부터입니다.
생선을 오래 두려고 밥은 버리던 음식 '스시'
초밥은 신선함의 상징이지만 그 뿌리는 정반대입니다. 일본 음식사 연구자 이시게 나오미치가 1993년 '아시아 발효 생선 제품의 문화적 측면'에서 정리한 내용대로라면 가장 오래된 형태인 나레즈시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 동남아 메콩강 유역에서 민물생선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소금 친 생선을 밥 속에 파묻어 몇 달, 길게는 몇 해씩 발효시킨 후 다 익으면 밥은 버리고 생선만 꺼내 먹었습니다. 여기서 밥은 발효를 일으키는 도구였을 뿐이었고요. 밥과 생선을 함께 먹기 시작한 건 한참 후의 일이고, 손으로 쥔 밥 위에 생선을 얹는 지금의 초밥은 1824년경 에도(도쿄)에서 하나야 요헤이가 선보인 그 시절의 패스트푸드 격이었답니다.
인도엔 없던 이름 '카레'
인도 하면 카레가 떠오르지만 정작 인도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카레’라는 하나의 단일 음식 범주가 있는 게 아니었다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인도 음식은 지역과 종교에 따라 로건 조시, 팔락 파니르처럼 저마다 다른 이름과 조리법을 가진 수백 가지 요리로 나뉘는데 이 전체를 뭉뚱그려 '커리'라 부른 건 영국이었습니다.
소스나 양념을 뜻하던 타밀어 '카리'가 영국식으로 굳었고 영국인들은 집에서 인도 맛을 흉내 내려 여러 향신료를 미리 섞은 '커리 파우더'까지 상품화했죠. 인도 요리엔 없던 물건으로 우리가 아는 카레는 인도 그 자체라기보다 인도를 바라본 외부 시선이 만든 이름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일부 음식의 정체성이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습니다. 계절도, 형태도, 이름도 시대의 필요와 기술, 때로는 오해가 겹쳐 지금의 모습으로 굳었을 뿐이죠. 오늘 냉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이 익숙한 음식이 실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이 여름을 상쾌하게 보낼 수 있는 작은 재미일지 모릅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