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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지주 무작위 앨범 소개] Chapel of Disease '…And as We Have Seen the Storm, We Have Embraced the Eye'

[악(樂)덕(후) 지주(극히 관적인) 무작위 앨범 소개] 스물여섯 번째는 2008년 독일 쾰른에서 의기투합해 70년대 감성의 헤비니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온 프로그레시브 데스메탈 밴드 Chapel of Disease(채플 오브 디지즈)의 '…And as We Have Seen the Storm, We Have Embraced the Eye'.

 

익스트림 메탈의 조상 격인 Morbid Angel(모비드 엔젤)의 두 곡 'Chapel of Ghouls'와 'Angel of Disease'에서 밴드 이름을 차용한 이들은 정통 올드스쿨 데스메탈을 표방해 Death(데스), Asphyx(아스픽스) 등의 푸르고도 검은 곰팡이 같은 질감을 답습했습니다.

 

초기 보컬 톤은 아스픽스의 마르틴 반 드루넨(Martin van Drunen)이 떠오를 정도였고 로랑과 세드릭, 당케르트는 이 시기 블랙풍 스래시 밴드 Infernäl Death(인퍼널 데스) 활동도 병행하며 습작기의 에너지를 나눴죠.

 

2012년 나온 정규 1집 'Summoning Black Gods'는 그 시절의 결정체로 직선을 따라 눅눅하게 질주하며 독일 올드스쿨 데스메탈 부흥기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3년 후… 2015년 2집 'The Mysterious Ways of Repetitive Art'에서 70년대 리듬과 서정을 끼워 넣더니 3집에 이르러 데스메탈이라는 장르의 껍질을 녹여버립니다.

 

2018년 11월 23일 독일 레이블 Ván Records를 통해 발매한 오늘 소개 앨범은 팜 뮤트로 뭉개던 자리에 70년대 하드록과 프로그레시브록의 리드 기타, 애트모스페릭 블랙메탈의 냉기, 블루스의 끈적거리는 유영을 얹었죠. Entombed(엔톰드)로 대표할 수 있는 이른바 '데스 앤 롤(death 'n' roll)' 계보보다 장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고요.

 

보컬과 기타를 겸하며 이 앨범의 녹음·믹싱·마스터링까지 혼자 맡은 로랑 토이블(Laurent Teubl)과 또 한 자루의 기타를 잡은 세드릭 토이블(Cedric Teubl) 형제가 전환을 주도했습니다. 여기에 베이시스트 크리스티안 크리거(Christian Krieger)와 드러머 다비트 당케르트(David Dankert)가 4인 진용을 완성했죠.

 

그로울링에 기본을 두면서도 클린 보컬이라는 새 카드를 조심스레 꺼낸 로랑과 피붙이 세드릭이 주고받는 트윈 기타는 앨범의 심장입니다. 곰삭은 트레몰로 리프를 깔다가도 과거 록 명반의 한 자락 같은 솔로로 미끄러지는 낙차가 청각에 달라붙습니다.

 

여기 더해 크리거의 베이스는 수록곡들의 긴 호흡 속에서 무게 중심을 굳건히 잡고 당케르트의 드럼은 블래스트 비트의 맹렬함과 그루브의 여유를 필요에 따라 조합하며 앨범이 늘어지지 않도록 붙들죠.

 

기존 헤비니스의 관성에 물린 메탈헤드라면 한 번쯤은 꼭 접해야 할 기묘한 장르적 변이를 제대로 제시하는 '…And as We Have Seen the Storm, We Have Embraced the Eye'. 여섯 곡 모두가 6분을 넘기는, 총 재생시간 47분 33초의 이 야심작을 트랙별로 살피며 이번 편 마칩니다. 유튜브로 연결되는 곡은 밴드가 이번 앨범을 염두에 두고 가장 먼저 쓴 'Void of Words'입니다.

 

 

첫 번째 트랙 'Void of Words'는 끊으며 이어가는 인트로로 숨을 고른 뒤 블래스트 비트와 로랑의 그로울링이 터지며 데스메탈을 의식하게 하다가 곧 빠른 블루스풍 멜로디가 스며들며 앨범의 방향을 예고하죠.

 

말(言)이 목구멍에서 무덤처럼 말라붙는 고립, 소통 불능을 그린 내성적인 가사를 청량 스트로크와 느슨한 솔로로 표현합니다. 즉흥 잼처럼 흐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 구간을 이어 붙인 정교한 구성이며 로랑의 보컬은 매끄러운 연주 위에 거친 이물질을 얹는 대비를 보여줍니다. 칼같이 자르는 마무리도 느낌 있고요.

 

두 번째 곡 'Oblivious – Obnoxious – Defiant'는 도입과 절정, 마무리가 하나의 서사처럼 맞물리며 음악과 가사가 나란히 줄거리를 끌고 갑니다.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구성이 촘촘해 다채로운 응집력이 강점인 곡으로 신과 어둠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끝내 부재 자체를 진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비교적 선명한 리프와 단계적으로 고조되는 전개 덕분에 긴 곡이지만 서사의 방향이 또렷하죠. 초반의 혼돈에서 포효를 통해 점차 진정을 찾는 보컬 역시 곡의 변화를 더욱 유동적으로 이끕니다.

 

세 번째 트랙 'Song of the Gods'는 클래식록풍 리프와 데스메탈의 근본을 붙드는 보컬이 서로 다른 두 목소리처럼 맞물리는 곡으로, 리프 하나로도 새로운 공간감을 창조하는 밴드의 역량을 과시하죠.

 

죽음의 부름을 들으면서도 삶의 기억을 놓지 못하는 이가 운명과 시간의 주체를 묻는 내용이며 수록곡 중 가장 직선적이고 심플한 기타 훅을 앞세워 무게감 있는 탄력을 청각에 주입합니다.

 

9분 21초에 이르는 다음 곡 'Null'은 레이블이 선공개 트랙으로 내세울 만큼 뇌리에 강하게 박히죠. 자신을 무(無), 상대를 전부로 놓고 생명의 가치와 구원을 캐묻는 곡이며 감상에 젖게 하는 블랙메탈풍 리프를 뒤쫓는 리드 기타가 조화를 이뤄 몽환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전개를 만듭니다.

 

로랑의 보컬은 문장을 잘게 끊어 외치며 자아가 갈라지는 절박함을 강조하죠. 큰 원을 그리듯 한참을 떠돌다 끝내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구성은 질문의 형태 그 자체이자 폭발적인 드라이브처럼 앨범의 정점을 찍습니다.

 

다섯 번째 트랙 '1.000 Different Paths'는 로랑이 처음 멜로딕한 클린 보컬을 시도한 곡입니다. 손에 쥐고도 쓸 곳을 찾지 못했던 리프가 결국 이 곡을 통해 완성됐다는 밴드의 사연이 전해지는 곡으로, 블루스의 끈적한 그루브가 곡 전체를 휘감죠.

 

각자 다른 삶을 살더라도 죽음의 부름 앞에서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떨어진다는 모호한 서사를 읊조리며 하드록에 가까이 접근해 기타의 잔향과 넓은 여백을 통해 고독이 깔린 정서를 끌고 갑니다.

 

앨범의 종착점에 당도하는 'The Sound of Shallow Grey'는 느리고 장대한 축적 대신 처음부터 곧장 파고드는 충동을 택한 곡입니다. 세 개의 반복 코드 위에 우연히 더해진 멜로딕 기타가 바탕을 넓히고 여러 번 폐기한 끝에 완성한 중간부가 곡의 표정을 바꾸죠.

 

죽음 너머의 진실을 찾으려 하지만 끝내 감각의 소멸만 확인하는 결말은 클래식록 리프와 데스메탈의 압력, 80년대풍 신시사이저를 뒤섞으며 앨범이 흩뿌린 음향을 긴 잔향으로 남깁니다.

 

Void of Words           7:24

 


Oblivious – Obnoxious – Defiant           7:30

 


Song of the Gods           7:12

 


Null           9:21

 


1.000 Different Paths           6:17

 


The Sound of Shallow Grey           9:49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