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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빛이 있다고 늘 길은 아니다

 

더운 날씨에 맞선 야간 러닝이 인기라고 하는데요. 집에서 쓰러지기 모자랄 시간에 야외활동을 한다는 건 추호도 생각한 적이 없는 저로선…

 

이달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블로그 내 식약메이트에 게재된 '밤에 러닝할 때 선크림, 꼭 발라야 할까?'라는 제하의 게시물을 보면 밤에 뛰는 러닝에서는 선크림(자외선차단제)을 꼭 바를 필요가 없답니다.

 

가로등, LED 조명의 자외선은 극소량이라 얼굴이 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다만 장시간 LED 노출 시에는 피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요.

 

이번 편의 이미지는 10년 전 여름, 경북 고령군 어디에선가 아웃포커스 촬영 연습을 하다가 찍은 결과물인데요.

 

야간 러너들의 어둠을 없애주는 여름밤 가로등 아래는 늘 부산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나방이며 하루살이 같은 날벌레들이 불빛 언저리를 정신없이 맴돌죠.

 

붙었다 멀어지고 다시 돌아오기를 쉼 없이 반복하는 건 빛을 좋아하는 그들의 당연한 특성이려니 생각했습니다. 달빛을 감지해 길을 잡는 곤충이 인공조명을 달로 착각한다는 설명도 제법 익숙했고요.

 

그런데 그들은 정말 빛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었을까요? 지난 2024년 1월 3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Why flying insects gather at artificial light(왜 날아다니는 곤충들은 인공조명에 모이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연구대로라면 이 통념은 어이없이 사그라집니다.

 

연구진은 실험실 고해상도 모션캡처와 야외 입체영상을 동원해 인공조명 주변 곤충의 비행을 3차원으로 추적했죠. 이 결과 곤충들은 불빛을 향해 곧장 날지 않고 몸의 등쪽을 빛으로 향하도록 계속 기울였습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데…

 

곤충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아득한 세월 동안 가장 밝은 곳은 대체로 하늘이었죠. 그런 만큼 밝은 쪽에 등을 두는 등쪽빛반응(dorsal light response)은 어느 쪽이 위인지 가늠하고 자세를 잡는 꽤 믿을 만한 방법이었을 테고요.

 

문제는 인간이 인공적인 빛을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곤충은 여전히 밝은 쪽을 위라 믿고 몸을 맞추지만 곳곳을 밝히는 빛에 비행은 어그러지는 거죠. 불빛 둘레를 원을 그리며 돌다가 급히 솟구치며 속도를 잃기도 하고 빛 위를 지날 땐 뒤집힌 채 곤두박질치는 곤경에 처합니다.

 

인간이 불나방이라 칭하며 불빛에 홀렸다고 여긴 모습은 매혹당한 게 아니라 혼란에 빠진 순간이었던 거죠. 빛이 좋아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날 방향을 잃었던 겁니다.

 

문득 얼마 전,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감상한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연상호 감독의 영화 '군체' 후반부에 감염자 무리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끝없이 도는 장면입니다. 서로의 뒤를 좇아 무섭게 회전하던 그 광경은 개미의 앤트밀(ant mill)이 모티프였다고 하죠.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라고도 부르는 앤트밀은 시각이 약한 군대개미 무리가 앞선 개미가 남긴 페로몬 자취를 따라가다, 선두가 길을 잘못 들면 대열 전체가 원형 궤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결국 탈진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도는 끔찍한 오류로, 저마다 앞 개미만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무리 전체가 파멸에 이르죠.

 

물론 가로등을 향하는 날벌레와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개미는 경우가 다릅니다. 하나는 오랜 진화가 새긴 자세 제어의 착오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이 공유한 신호를 따르다 생긴 오류죠. 한쪽은 가장 밝은 곳을 위라 믿고, 다른 한쪽은 앞선 자취를 길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의심하지 않는 한 둘 다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죠.

 

가로등이 밝은 빛을 내는 한 날벌레는 언제까지나 분주할 겁니다. 맹목적으로 빛을 탐하는 줄 알았던 곤충들이 이제는 딱하게도 보이네요. 곤충에게 하늘을 알려주던 빛도, 개미에게 길을 이어주던 자취도 이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신호를 받아들여 삶까지 잃게 되는 현실이라니 영화보다 더한 공포감이 느껴지네요. 가장 밝아 하늘이 아니고, 가장 많이 다녀 길이 아닌 겁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오류가 있는지 살면서 한 번쯤은 살펴봐야겠죠? 빛과 길처럼 보인다고 늘 따를 수는 없으니까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