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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 은행나무에는 사실 '은행 열매'가 없다

은행나무는 도심 그늘 제공, 공기 정화 등으로 맡은 역할을 고맙게 수행하지만 9월 하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떨어지는 열매는 꺼려지는 냄새와 보행 불편, 도시 미관 저해 등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기 대응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낙과 수집망(열매 수거망) 설치, 열매 제거 작업 등으로 쾌적한 거리 환경 조성을 도모하죠.

 

우리가 흔히 '은행 열매'라고 부르는 이 가을철 거리의 골칫거리는 식물학적으로 열매(과실, fruit)가 아닙니다. 과실은 속씨식물의 꽃에서 씨방이 발달해 만들어지는 구조인데 은행나무는 소나무·소철 등과 같은 겉씨식물입니다. 씨방 자체가 없으니 과실도 만들 수 없죠.

 

일상적인 의미에서 열매라고 부르는 것까지 뭐라 할 필요는 없지만 식물학적 관점으로 따지면 길가에 떨어진 은행은 씨앗입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식물정보 자료도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므로 과실을 만들지 않으며 암그루에서 자두처럼 보이는 씨앗이 생긴다고 설명하고요.

 

과육처럼 보이는 노란 부분도 과육이 아니라 은행 씨앗을 감싼 씨껍질 가운데 바깥쪽이 두껍고 물렁하게 발달한 육질외종피(sarcotesta)입니다. 그 안에 단단한 중간 씨껍질이 있고 다시 얇은 안쪽 층이 자리하는데 우리가 껍데기를 깨서 먹는 은행알은 이 여러 겹의 씨껍질 안쪽에 있죠. 은행 씨앗이 웬만한 과일 못지않은 모습이라 열매처럼 취급했을 뿐입니다.

 


냄새의 범인은 육질외종피…씨앗은 암나무에만


코를 틀어쥐게 만드는 냄새의 원인-이라 기재하고 범인으로 읽는-은 육질외종피입니다. 성숙한 은행 씨앗의 바깥층에는 부탄산,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름으로 부티르산과 헥산산 같은 휘발성 지방산이 있죠.

 

부티르산은 산패한 버터에서도 나는 냄새로 익히 알려진 물질입니다. 은행이 익어 물러진 데다 발에 밟혀 육질외종피가 터지면 이 냄새가 거리로 퍼지죠. 여러 학술자료에서도 성숙한 은행 씨앗의 불쾌한 냄새를 일으키는 주요 휘발성 성분으로 부탄산과 헥산산을 지목합니다.

 

맨손으로 은행을 주울 수도 없죠. 씨앗 바깥층에는 긴코릭산(ginkgolic acid) 같은 알킬페놀류도 있어 피부에 직접 닿으면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의학 문헌에는 은행나무와의 접촉 뒤 홍반이나 물집, 부종 등이 생긴 사례와 긴코릭산의 관련성이 보고돼 있습니다.

 

 

이 골칫덩이는 모든 은행나무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죠. 이 골칫덩이는 모든 은행나무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죠.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존재하는 암수딴그루라 씨앗은 암나무에만 달립니다. 어린 은행나무의 생김새만 보고 암수를 가리기 쉽지 않아 수나무만 식재하는 것도 어렵고요.

 

지난 2018년 3월 20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통상 15년가량 자란 뒤에야 암수 확인이 가능했던 탓에 무심코 심은 암나무들이 훗날 도심의 '냄새 공장'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유전자 검사였죠. 국립산림과학원은 2011년 은행나무 성감별 유전자 정보(DNA) 분석기술을 개발했습니다. 1년생 은행나무에서도 손톱 크기 정도의 잎을 떼어 DNA를 분석하면 암수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이 기술은 국내외 특허 등록과 민간 기술이전도 이뤄졌고요.

 

다만 은행나무 성감별 기술은 새로 심을 묘목의 암수를 미리 가리는 기술이라 이미 자란 암나무에는 효과가 없습니다. 기존 암나무를 모두 수나무로 바꾸려면 제거·이식·식재 비용과 경관 훼손 부담이 커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있죠.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정자는 지금도 헤엄친다


이처럼 냄새 때문에 천덕꾸러기로 취급하지만 은행나무도 참된 값어치가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학명은 'Ginkgo biloba'이며 현재 지구상에 살아 있는 은행속(Ginkgo) 식물은 이 한 종뿐입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Kew)에 따르면 은행속 하나만 남은 데 그치지 않고 은행과, 은행목으로 올라가도 현존하는 계통이 홀로 남았죠. 2억 년이 넘는 옛 지층에서도 오늘날 은행잎과 매우 비슷한 화석이 발견돼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립니다.

 

은행나무가 수억 년 동안 아무런 유전적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에는 여러 종으로 번성했던 아주 오래된 계통에서 오늘날 살아남은 대표가 사실상 은행나무 하나라는 의미에 가깝죠.

 

정말 놀라운 건 번식 방식입니다. 봄에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암나무의 밑씨에 도착한 후 수개월간 수컷의 생식세포를 만들어내는 식물의 생식세대인 수배우체가 발달하고 늦여름께 수정 단계에 이르죠. 이때 은행나무의 수컷 생식세포는 그냥 난세포까지 직접 헤엄칩니다.

 

은행나무의 정자는 수많은 편모를 갖고 있으며 밑씨 내부의 액체 속에서 난세포를 향해 짧은 거리를 이동하죠. 씨앗을 만드는 식물 가운데 이런 '운동성 정자'를 지금도 유지한 무리는 은행나무와 소철류 정도뿐입니다. 은행나무의 번식 방식에 아주 오래된 식물 진화의 흔적이 남은 거죠.

 

이 사실이 밝혀진 것도 흥미롭습니다. 1896년 일본 도쿄제국대학에서 일하던 히라세 사쿠고로가 은행나무의 정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거든요. 당시 씨앗식물에서도 정자가 헤엄친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기에 세계 식물학계에서도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히라세가 연구했던 도쿄대 고이시카와식물원의 은행나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도 흥미롭죠.

 

아,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은행 씨앗에는 '긴코톡신'으로도 불리는 4'-O-메틸피리독신 같은 신경독성 물질이 있어 과다 섭취하면 구토나 경련 등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위험성이 크다네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가로수 과실 안전성 조사 당시 은행을 반드시 익혀 섭취하는 동시에 하루 섭취량은 성인 10알, 어린이 2~3알 이내로 제한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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