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계양구청 남측광장과 문화로 일대가 이달 23일부터 국화 정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계양구가 제32회 구민의 날을 맞아 내달 31일까지 여는 '제18회 가을꽃(국화 및 야생화) 전시회'로 국화와 구절초, 가든맘, 소국 등 1만여 본이 꽃 터널과 핑크뮬리길 사이를 채우고 있죠.
24일에는 강화군 화개정원이 폭포 앞 광장과 진입로에 고양이·하트 모양 국화 조형물을 세웠고 가든맘 국화와 억새, 율마로 엮은 '국화 미로'를 열어 역시 10월 말까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은 '신화의 국화동산' 주제의 '2026 대한민국 국향대전'을 다음 달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17일간 함평엑스포공원에서 연다고 알리며 지난 23일부터 입장권 사전예매에 들어갔죠.
그런데 관련 안내를 보니 계양구는 국화 개화 상태에 따라 전시 기간이 일부 조정될 수 있답니다. 강화군은 국화가 지금 봉오리를 맺어 차례로 피어나는 단계라고 설명하네요.
어둠을 기다리는 꽃
국화는 대표적인 단일성(短日性) 식물입니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질 때 꽃을 피우는 식물을 이렇게 부르는데요. 이 원리를 실험으로 밝혀 발표한 건 1920년입니다. 미국 농무부(USDA) 소속 와이트먼 가너(Wightman Garner)와 해리 앨러드(Harry Allard)는 메릴랜드 들판에서 나타난 담배 변종 '메릴랜드 매머드(Maryland Mammoth)'에 주목했죠.
보통 담배는 잎을 20장 남짓 내면 꽃으로 넘어가는데, 이 변종은 100장 가까이 잎을 달고 키만 키울 뿐 여름 내내 꽃을 피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겨울 온실에서는 꽃이 핀 거죠.
약한 빛, 영양 부족, 옮겨심기 충격 같은 가설을 하나씩 지운 두 사람에게 마지막 남은 답이 낮의 길이였습니다. 한여름 늦은 오후마다 빛이 새지 않는 구조물을 씌워 낮을 인위적으로 줄여 주자 들판의 매머드가 꽃을 피웠죠. 두 사람은 이후 이 현상에 광주기성(photoperiodism)이라는 이름을 붙였고요.
그런데 18년 뒤에 반전이 나옵니다. 1938년 칼 햄너(Karl Hamner)와 제임스 보너(James Bonner)는 단일성 식물인 도꼬마리(Xanthium) 실험에서 식물이 실제로 재는 건 낮이 아니라 밤의 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죠.
밤 길이가 8시간 30분을 넘어야 꽃이 피었고 긴 밤 한가운데 잠깐만 빛을 비춰도 개화 효과가 줄거나 사라졌거든요. 단일성 식물을 사실상 '긴 밤 식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 여기서 나옵니다. 국화는 밤을 새우는 게 아니라 밤을 세고 있던 셈이죠.
암막을 치면 여름, 불을 켜면 겨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원예원)이 2024년 6월 내놓은 여름철 국화 재배 요령을 살피면 대부분의 재배용 국화 품종은 자연 상태에서 10월 말에 꽃을 피웁니다. 이 꽃을 한여름에 보려면 암막으로 빛을 가려 밤 길이를 13시간으로 만들어 줘야 하는데 품종마다 기준도 다르다네요. 당시 보급이 늘던 '백강'은 자연 상태에서 10월 중순에 피는 품종이라 밤 길이를 12시간 30분으로 맞추면 된답니다.
여름 암막 재배에는 대가도 따르죠. 온실 안이 40도까지 오르면 줄기 꼭대기 꽃눈이 덜 여문 봉오리에 머무는 '버들눈' 현상이나 꽃 속에 또 꽃이 생기는 '관생화' 같은 장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붉은색과 분홍색을 내는 안토시아닌 색소는 25도를 넘으면 거의 만들어지지 않아 꽃빛도 바래고요. 그래서 암막은 되도록 늦게 닫아 밤 온도가 25도 위로 오르지 않게 하라는 게 원예원의 조언입니다.
거꾸로 꽃을 늦추고 싶을 때는 밤을 끊으면 되죠. 전라남도농업기술원은 2010년 8월, 밤 중간에 4시간 이상 조명을 비춰 꽃눈이 생기는 걸 막는 전조(電照)재배에서 백색 LED로도 국화의 개화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시험 결과를 내놨습니다. 가을이 와도 밤이 짧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방식이고요.
충청북도농업기술원 영농기술 자료를 보면 국화는 자연 개화 시기에 따라 6월 이전에 피는 하국, 7~9월의 하추국, 10~11월의 추국으로 나뉩니다. 이 중 추국은 우리나라에서 8월 25일께 스스로 꽃눈을 만들기 시작해 10월 25일 전후에 피며, 여름에는 차광재배로 앞당기고 겨울에는 전조재배로 늦출 수 있습니다. 꽃집에 사철 국화가 끊이지 않는 건 밤의 길이를 조절한 덕분이죠.
옛 달력에 먼저 적힌 꽃
국화가 늦가을의 시계라는 건 옛사람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은 가을의 마지막 달인 계추(季秋), 곧 음력 9월의 풍경을 적으며 '鞠有黃華(국유황화)', 국화에 노란 꽃이 핀다고 기록했죠. 하나라 역법을 전한다는 하소정(夏小正)에도 '九月榮鞠(구월영국)', 9월에 국화가 핀다는 구절이 있고요. 여기서 鞠은 菊 대신 빌려 쓴 글자입니다.
후한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국화를 일정(日精)이라 부르며 가을에 꽃을 피우는 풀로 풀이하기도 했죠. 청나라 고증학자 단옥재(段玉裁)는 주석에서 여러 판본에 '似秋華(사추화)', 가을꽃과 닮았다고 적힌 대목을 송나라 판본 등에 근거해 '以秋華(이추화)', 가을에 꽃을 피운다로 바로잡았고요. 그러면서 하소정과 월령의 두 구절을 나란히 끌어와 뜻을 받쳤습니다. 가을에 핀다는 사실 자체를 국화의 정체로 본 거죠.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음주(飮酒) 연작 제5수에서 읊은 구절도 이 계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무심히 남산을 바라본다는 노래죠.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국화를 즐기던 풍습 역시 국화가 제철을 맞는 때와 맞물려 있습니다.
지금 계양과 강화의 봉오리들은 해가 진 뒤 조금씩 길어지는 어둠을 하루하루 헤아리고 있을 테죠. 그 셈이 다 채워질 즈음 함평의 국화동산도 문을 열 거고요. 서늘한 바람보다 한발 늦게, 긴 밤을 다 센 뒤에야 피는 꽃. 올가을 국화 앞에 선다면 그 꽃이 지나온 밤의 길이도 함께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