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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코체크] 먼저 깎던 연금, 먼저 주면 끝?

산재 가능성만으로 절반 감액한 국민연금, 5년간 2207건은 19~23개월 뒤 잔여분 지급

[IE 사회] 일터에서 다친 것인지, 일터 밖에서 다친 것인지 아직 판가름내지 못한 시간이 있다. 가족을 잃었거나 몸을 다친 이에게 생계가 가장 위태로운 때이지만 국민연금은 이 시간에 연금을 절반만 내줬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2일 '산업재해 급여를 받을 '가능성'만으로 국민연금 미리 감액하는 것은 '과도'해'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에 '국민연금 중복급여 조정제도 개선방안'을 권고했다고 알렸다. 산재 급여를 받을 가능성이 있거나 업무상 재해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사정만으로 연금을 미리 깎지 말라는 것이 골자다.

 

권익위 실태조사 결과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을 50%만 지급했다가 산재 불승인 등으로 나머지 50%를 뒤늦게 지급한 사례는 유족연금 1882건, 장애연금 325건으로 모두 2207건이다. 나머지 절반을 받기까지 유족연금은 평균 약 19개월, 장애연금은 약 23개월이 걸렸다.

 


받을 수 있는? 받을지 모르는?


국민연금법 제113조는 장애연금 또는 유족연금 수급권자가 같은 사유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7조의 장해급여, 제62조의 유족급여, 제91조의3의 진폐보상연금, 제91조의4의 진폐유족연금 등을 '받을 수 있는 경우' 연금액의 2분의 1만 지급하도록 정한다. 두 제도 모두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인 만큼 한 가지 사고에 급여가 겹쳐 나가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그 아래 지침이다. 권익위 설명대로라면 국민연금공단 지침은 산재보험법 등에 따른 급여를 받을 가능성이 있거나 업무상 재해 여부가 불명확한 경우까지 '우선 중복급여 조정 대상'으로 정해 절반만 지급하게 했다.

 

법 조문의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실무에서는 '받을지 모르는' 상황으로 넓어진 셈이다. 이 간극에서 나온 불확실성은 2207건의 수급권자가 평균 1년 반에서 2년 가까이 떠안아야 했다.

 

 

권고는 국민연금법이 정한 조정 대상에 해당할 때만 연금을 조정하도록 지침을 고치고 두 공단의 산재 정보 공유 시점을 현행 승인단계에서 신청단계까지 앞당기는 내용이다. 또 전액 지급 후 산재 급여 수급이 확인될 때를 대비해 환수 절차를 지침에 명확히 두고 지급 단계에서 환수 가능성과 방법을 미리 안내해야 한다.

 

이번 개선에 따라 수급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면서 중복급여는 더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오정택 권익위 권익개선정책국장의 기대 섞인 제언이다.

 

다만 보도자료를 상세히 보면 2207건은 뒤늦게 절반을 돌려받은 건수일 뿐, 같은 기간 우선 조정 대상으로 분류한 전체 건수와 금액은 알 수 없다. 열아홉 달, 스물세 달 늦게 내준 절반에 이자를 붙였는지도 설명이 없다. 권고의 이행 시한, 두 공단의 수용 여부, 현재 절반만 받으며 판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도 빠졌다.

 


먼저 주는 나라의 장부


권고의 실체는 감액 폐지가 아니라 먼저 깎고 나중에 채워주던 순서에서 먼저 준 다음 나중에 돌려받는 순서로 바꾸는 일이다. 불확실성을 떠안는 쪽이 수급권자에서 공단으로 옮겨가는 이 순서를 오래전부터 써온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사회보장국(SSA) 감사관실(OIG)이 지난 2019년 10월 낸 감사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장애보험 급여를 승인하는 시점에 산재보상 청구가 계류 중일 경우, 수급자는 이후 산재보상 수령 사실을 신고해야 하고 사회보장국 처리센터는 사안이 해소될 때까지 추적하게 돼 있다.

 

그런데 2017 회계연도 말 기준 수급자 6만5214명에 걸쳐 7만4480건이 계류 중이었고, 감사관실은 표본 200건 가운데 35건이 부적절하게 처리된 점을 근거로 전체의 17%인 1만2662건에서 약 1억5100만 달러(현재 하나은행 고시환율 기준 약 2052억2410만 원)의 부적정 지급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표본에서 확인한 오류는 과다지급 약 24만2000달러(3억2888만 원), 과소지급 약 28만5000달러(3억8732만 원)로 양쪽 모두에서 나왔다. 일회성 문제도 아니었다. 2010년 7월 감사보고서 요약본에는 산재보상 청구가 2년 이상 계류된 사례는 2005년 1월 22만7615건에서 2009년 11월 26만8825건으로 18% 늘었다는 자료를 실었다.

 

감사관실은 신고되지 않은 산재보상 때문에 2003년 6월 보고서 이후 4400만~5800만 달러(597억8720만~788억2200만 원)를 과다 지급했다고 짚었다. 감사관실이 내놓은 처방은 신규 계류 사례를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자동화 절차, 산재보상 운영 기관이 지급 정보를 사회보장국에 제공하도록 하는 입법이었다.

 

권익위가 정보 공유 시점을 신청단계로 앞당기라고 권고한 대목은 이 처방과 방향이 같으나 미국 사례는 정보를 받는 일과 그 정보를 끝까지 따라가는 일이 별개라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보장국은 추적 의무를 규정에 두고도 감사 때마다 같은 지적을 받았다.

 

환수 역시 장부 정리처럼 끝나지 않는다. 대법원은 2017년 3월 30일 선고한 2015두43971 판결에서 국민연금법 제57조 제1항에 따라 잘못 지급된 급여를 환수할 때는 환수해야 할 공익상 필요와 당사자가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교량해 공익상 필요가 그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강한 경우에 한해 처분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절반이라는 숫자는 그대로


전액을 받아 생활비로 쓴 유족에게 1~2년 뒤 절반을 되돌려달라고 할 때 일시 환수인지, 분할인지, 이후 연금에서 차감하는지에 따라 분쟁의 크기가 달라진다. 권익위가 환수 절차를 지침에 명확히 두고 사전에 안내하라고 한 까닭이지만 그 구체적 방식은 공단 몫으로 남았다.

 

아울러 이번 권고가 건드리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2분의 1이라는 감액 폭 자체다. 우리나라는 산재 급여가 실제 얼마인지와 무관하게 국민연금을 절반으로 깎는다.

 

일본 후생노동성 안내를 살피면 이 나라의 경우 후생연금은 전액 지급하고 산재연금에 조정률을 곱해 줄이는데, 장해후생연금과 장해기초연금을 함께 받는다면 장해보상연금의 조정률은 0.73, 유족후생연금과 유족기초연금을 함께 받는 경우 유족보상연금의 조정률은 0.80이다.

 

조정한 산재연금과 후생연금의 합계가 조정 전 산재연금보다 낮아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뒀다. 미국은 합계에 상한을 씌운다. 사회보장국의 2022년 장애보험 연례 통계보고서는 산재보상 등 공적 장애급여와 사회보장 장애급여의 합계가 장애 이전 평균소득의 80%를 넘을 때 그 초과분만 사회보장 급여에서 차감한다는 요지를 포함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우리처럼 한쪽 급여를 일률적으로 절반 깎는 구조는 아니다. 일률 절반은 계산이 쉬운 대신 산재 급여가 적은 사람일수록 손실이 커진다. 지침이 법보다 넓게 깎아온 관행을 바로잡는 이번 권고는 필요한 조치지만 법이 정한 절반이 적정한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2207건의 수급권자가 기다린 19개월과 23개월. 순서를 바꾸면 그 시간은 수급권자에게서 걷히나 미국의 7만4480건에서 볼 수 있듯 추적과 환수라는 새 숙제가 공단에 돌아간다. 우선 조정 대상 전체 건수와 금액, 지연 지급분의 이자, 환수 방식과 소급 범위, 신청단계 정보를 따라갈 전산 체계까지 함께 마련해야 궁지에 몰린 이들의 대기 시간을 없앨 수 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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