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씨 이야기] 질문을 끌어안은 존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영화 '프랑켄슈타인'

2025.12.02 11:20:37

 

'영화를 좋아하는 김경의 화·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주의.


가장 최근 '수영씨 이야기'가 올해 7월 29일이더라고요. 저는 기껏 해봤자 두 달 정도 지나겠거니 생각했는데 다섯 달이나 흘렀다는 점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동안 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마지막 콘텐츠 작성 이후부터 계산해 보니 단편영화를 포함해 대략 50여 개를 감상했더라고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봤던 제품을 제외하고 영화관에서 감상했던 작품들은 30개 정도가 되겠네요.

 

감상하면서 수영씨든 어떤 콘텐츠로 소감 한마디를 남기고픈 작품들을 꼽자면 디첸 로더 감독의 '나와 그녀'와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의 '어글리 시스터(이 작품은 짜사이로 작성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훌륭한 글들이 많아 저까지 덧붙이기엔 오히려 쑥스럽더군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원작 소설까지 읽을 정도로 기대했는데, 막상 쓰려니 마음이 크게 움직이진 않아 몇 줄 쓰다 멈췄습니다.

 

 

그러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그저 배우 한 명을 보기 위해 들어간 극장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를 만났는데요. 바로 '프랑켄슈타인'입니다. 무려 1818년에 쓰인 최초 과학공상(SF)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천재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죽음을 정복하겠다며 여러 시체로 '크리처(괴물)'를 만들었지만, 결국 빅터 자신과 크리처 모두 파멸을 맞게 되는 얘긴데요.

 

 

우연히 넷플릭스 공개 예정작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도 "집에서 편하게 보면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잊었는데, 배우 '미아 고스'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인터넷에서 영화 'X' 줄거리와 스틸컷으로 미아 고스란 배우를 처음 접해 그의 작품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정작 X는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어 X의 프리퀄인 '펄'과 '맥신'밖에 볼 수 없었지만, 미아 고스의 매력에 빠지기엔 충분했습니다. 그런 배우를 큰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는데 예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죠.

 

프랑켄슈타인은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에 극장을 통해 며칠 동안 공개됐는데요. 이 같은 극장 선공개는 내년 3월 개최하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카데미 후보가 되려면 미국 6개 대도시권 극장에서 최소 하루 이상, 일주일 연속 상영해야 하죠. OTT 영화의 경우 스트리밍 공개 전 극장에서 먼저 선보여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제 첫 감상은 "극장에서 N차 찍을 수 있으면(여러 번 관람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큰 화면을 통해 세심한 연출과 미장센, 배우들의 열연을 봐야 했는데 말이죠. 특히 소설이나 게임,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원작으로 영화가 생산되는 대부분인 요즘, 프랑켄슈타인은 원작 구현의 '모범 사례'이기도 했고요.

 

이 작품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원작에 대해 "이 책의 매력은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는 10대 같다는 것에 있는데, 그 질문은 때론 짜증 날 정도로 날카롭다"고 설명하며 애정을 드러냈죠.

 

사랑하는 원작을 원작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기예르모 감독은 그만의 감성, 스타일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냄과 동시에 원작 속 대화 말투와 리듬감, 주제를 살리려고 했답니다.

 

또 현대 시각으로 보기엔 다소 불편할 수 있을 법한 요소들도 자연스럽게 없애되, 원작의 주제를 훼손하지 않았고요. 일례로 원작 속 크리처가 분노에 못 이겨 일으킨 무분별한 살인에 대해서는 다소 눈을 찌푸릴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오두막집에서나 남극으로 향하는 선원을 죽이긴 했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요.

 

"사냥꾼은 늑대를 미워하지 않고 늑대는 양을 미워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들 사이의 폭력을 피할 수 없어 보였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 이게 세상의 이치겠구나. 어떤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사냥당하고 죽임당할 수 있는 거야."

-오두막에서 벌어진 사냥꾼과 늑대의 싸움을 접한 크리처의 대사

 

영화가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윌리엄과 그의 약혼자인 엘리자베스입니다.

 

 

원작 속 윌리엄은 5살 꼬마로 죽음을 맞는 단역이지만 영화에서는 형의 사랑을 갈망하는 캐릭터로 등장하죠. 엘리자베스(미아 고스 扮)는 본래 빅터의 약혼자지만 영화에선 윌리엄과 약혼을 한 설정으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늘 품고 있던 인물인데요. 죽기 직전 크리처에게 죽음과 사랑의 본질을 일깨워줍니다. 

 

"내 자리는 애초에 이 세상에 없었어. 이름도 모를 무언갈 찾고 갈망했지. 잃어버리고 되찾는 것. 그게 사랑의 생애야. 그 덧없음과 비극 속에서 이건 '영원'이 됐어. 차라리 이렇게 떠나가는 게 나아. 네 눈이 내게 머물고 있을 때."

-죽기 직전 엘리자베스의 대사

 

엘리자베스가 죽은 뒤 크리처가 그의 머리를 훼손할까 걱정했는데(원작에선 크리처가 여성 크리처 제작을 위해 죽은 유모의 머리를 잘라 빅터에게 건네줬다), 엘리자베스의 유언을 듣고 그녀를 온전한 죽음의 세계로 보내줍니다.

 

크리처는 탄생 이후 늘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데요.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한 번쯤 갈구한 경험이 있습니다.

 


기예르모 감독은 그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는 대신 질문 그 자체를 포용하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마치 끝없는 궤도를 달리는 별 같아. 마치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찾아가 미완성의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라는 동방신기의 '라이징선' 가사가 떠오르네요.

 


이 밖에도 영화에서 빅터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라며 등장했던 빅터 아버지의 모습을 답습합니다. 매몰찬 아버지에게 자라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던 빅터는 피조물의 아버지와도 같지만 그를 냉정하게 대하죠. 하지만 크리처는 긴 여정 끝에 다시 마주하게 된 그를 용서하게 됩니다. 이런 부모의 모습과 용서를 통해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고통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셈이죠.

 

미아 고스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큰 틀은 천재 과학자 얘기지만 부자관계의 슬픔, 외로움과 고립,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갈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이 영화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처음으로 친구들한테 일명 '영업'으로 불리는 영화 추천을 했는데요. 결과는 대성공. 그래서 뒤늦게나마 독자분들에게도 영업하기 위해 수영씨를 작성하게 됐습니다.

 

의상과 소품, 색감, 구도 등 의미 없는 배치가 하나도 없이 모든 게 교향곡처럼 어우러진 작품 프랑켄슈타인. 올해를 정리하는 연말, 이 영화를 통해 자연스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



김수경 기자 sksk@issueedi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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