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 양대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1월 24일이니 2월 17일 설까지 이제 24일 남았네요. 일가친척이 모여 떡국을 나누며 세배를 주고받는 이 하루가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지만 40년 전만 해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면 쉽게 믿을 수 있으려나요?
1985년 이전의 우리 부모 세대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게도 음력설에 쉬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지금의 설날은 다시 부활한 것이기 때문이죠. 당시 노태우 정부와 민정당은 당정회의를 거쳐 구정 명칭을 설날로 바꾸고 설날 전후의 연휴를 확정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우리의 전통 설날(구정)과 양력 1월 1일인 신정도 명절로 지정했다가 광복 후 신정을 공휴일에 포함하면서 구정을 없앴으나 대부분 국민이 구정을 설로 쇠자 다시 부활시킨 겁니다. 구정(舊正)이라 지칭해 낡은 풍습으로 치부하며 양력 1월 1일만을 신정(新正)이라 부르면서 기념했죠.
일제 때부터 이어진 전통 말살의 상흔이 광복 후에도 그대로 남았다가 지난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하루만 쉬는 반쪽 공휴일이 됐고, 1989년 1월 24일이 돼서야 비로소 '설날'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으며 사흘 연휴로 정해졌습니다. 무려 70여 년 만의 정명(正名)이었고요.
세계 곳곳에도 이처럼 시대의 풍파 속에 사라졌다가 되살아난 기념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게 공동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거죠.

혁명의 그늘에서 부활한 러시아 '성탄절'
러시아의 성탄절은 1월 7일입니다.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 때문인데요, 이 성탄절은 과거 소비에트연방(소련) 시절 철저히 지워졌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을 내세워 정교회를 탄압한 소련 정부는 수많은 교회를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체포했으며, 성탄절 등 종교적 기념일은 달력에서 완전히 없앴죠.
대신 1월 1일 신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신년 트리'가 됐고 산타클로스는 '겨울 할아버지(Дед Мороз, 제드 마로스)'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1월 7일 성탄절이 다시 공휴일로 부활했죠. 70년 넘게 억압받던 러시아 정교회가 숨통을 틔운 거고요. 현재 러시아에서는 1월 1일부터 8일까지 긴 연휴를 즐기며, 그 가운데 7일 성탄절을 국가 차원에서 기린답니다.
구습으로 몰렸던 중국 '단오절'
중국의 단오절은 음력 5월 5일로, 지조의 상징인 초나라 인물 굴원을 기리며 우리나라의 약밥과 비슷한 종자(粽子)를 먹고 용선(龍船) 경주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2000년 넘은 이 전통이 완전히 금지됐던 시절이 있죠.
눈치 채셨겠지만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 공산당은 전통문화를 봉건적 구습으로 규정하고 단오절을 비롯한 전통 명절을 모두 폐지했습니다. 춘절(음력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명절이 여기 해당했고요.
이후 40여 년간 중국인들은 서양식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는 즐기면서도 정작 자국의 전통 명절은 쇠지 않았습니다. 단오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젊은이들도 부지기수였다죠.
전환점은 2000년대 중반 한국과의 단오 논쟁이었습니다.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중국 내에서 전통문화 보존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2008년 중국 정부는 단오절, 청명절, 중추절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했죠. 문화대혁명 이후 40년 만의 복원이었습니다.
156년 만에 연방 공휴일이 된 미국 '준틴스'
미국에는 '준틴스(Juneteenth)'라는 다소 낯선 공휴일이 있습니다.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합친 이름으로,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주의 마지막 흑인 노예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했지만, 남부 연합에 속했던 텍사스주는 2년 반이나 지난 1865년 6월 19일에야 뒤늦게 노예 해방을 알렸습니다. 이날을 위시해 텍사스 갤버스턴의 흑인 주민들이 매년 이날을 기리자 1980년 텍사스주가 공휴일로 지정했다네요.
하지만 준틴스는 오랫동안 흑인 공동체만의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러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종 정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준틴스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고 2021년 6월 17일,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준틴스를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에 서명했죠.
마틴 루터 킹 데이 이후 38년 만에 새로 생긴 연방 공휴일이자 노예 해방 이후 156년 만에 흑인을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서술한 사례들은 단순히 하루 늘어난 쉬는 날이 아니라 공동체가 형성한 하나의 기억과 마음을 다지는 날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날인 거죠.
민족 정체성과 전통 회복, 억압에서의 해방을 기억하는 약속의 날입니다. 하나의 기념일을 갖는다는 것은 곧 우리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되새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