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사이] 알찬 저녁하늘… 우리에게 퍼지는 것들

2026.02.07 10:15:48

설 연휴를 앞두고 계란 한 판을 포함해 이런저런 식자재를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특란 30개 가격이 7000원을 훌쩍 넘어선 걸 보고 온라인 마트 할인혜택을 노리며 그냥 돌아섰죠. 이달 카드 사용액을 보고 절망에 빠져 빈손으로 마트를 나서며 알알이 맺힌 눈물.

 

올 겨울도 설을 앞두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African Swine Fever)과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지는 와중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까지 기승을 부립니다. 산란계 농장에서만 432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소비자 장바구니로 옮겨왔죠.

 

정부는 급한 불을 끄려고 미국산 신선란 224만 개를 긴급 수입했는데 지난달 23일 첫 물량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30일부터 대형마트에 풀렸습니다. 대형마트 기준으로 한 판 6000원 정도의 가격이지만 이런저런 논란은 여전하네요.


알 권리를 위한 열 자리


국내 계란 껍데기에는 10자리 숫자가 찍혀 있습니다. 맨 앞 4자리는 닭이 알을 낳은 날짜, 그다음 5자리는 생산농가 고유번호, 마지막 1자리는 사육환경을 표기하죠.

 

0205M3FDS2라면 2월 5일에 낳은 알이고, M3FDS 농장, 닭장과 축사를 자유롭게 오가는 평사(2번) 환경에서 생산됐다는 뜻입니다. 사육환경 번호는 1번이 방목장 방사, 2번이 평사, 3번과 4번은 케이지 사육으로 면적 기준이 다르고요.

 

2019년 8월 전면 시행된 산란일자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도입됐습니다. 유통기한만 보고 계란을 고르던 시절, 일부 농가에서는 값이 떨어지면 오래 보관했다가 가격이 오를 때 포장해 출하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닭이 언제 알을 낳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으니 신선도 판단이 한결 수월해진 거죠.

 

그런데 이번에 수입된 미국산 계란은 난각 표기가 우리나라와 달라 산란일자, 사육환경 정보 외에 농장 고유번호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미국은 산란일자 표시 의무가 없는데다가 산란계 한 마리당 권장 사육면적도 0.042에서 0.049㎡로 국내 기준인 0.05㎡보다 좁고요.

 

이런 만큼 산란계협회는 국내 기준 적용 시 판매 자체가 어렵다고 반발하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한 판당 상당한 예산을 들여 6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공급하는 것도 과도한 보조라는 일각의 비판 또한 있고요.

 

국산 계란은 엄격한 잣대로 관리하면서 수입산에는 예외를 두는 게 맞느냐는 게 이들의 견해입니다. 알을 낳기 위해 산란에 이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닭의 고통은 우리네 밥상물가 앞에선 떠올릴 여지도 없는 때라는 게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마음에 번지는 또 다른 산란


산란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리다 보니 묘한 우연이 떠오릅니다. 닭이 알을 낳는 산란(産卵)과 빛이 입자와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지는 현상인 산란(散亂)은 서로 한자가 달라도 이번 '짜사이'의 맥을 이어주거든요. 

 

한 쪽은 낳고 다른 한 쪽은 퍼지는 산란. 발음만 같은 이 두 단어 모두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닭의 산란은 식탁 물가를 흔들어 장바구니의 무게를 바꾸고 빛의 산란은 하루 끝자락 하늘의 색을 바꿔 마음의 균형을 흔들죠. 낳는 것과 퍼지는 것, 둘 다 결국 일상의 결을 건드리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미지는 지난주 이른 퇴근길에 스마트폰에 담은 노을입니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은 지구 대기를 통과하며 공기 중의 질소, 산소 분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는데 이때 파장이 짧은 파란색, 보라색 빛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파장이 긴 빨간색, 주황색 빛은 비교적 덜 흩어지며 흔적을 남기고요. 아르곤을 발견해 190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물리학자 존 윌리엄 스트럿, 제3대 레일리 남작(John William Strutt, 3rd Baron Rayleigh)이 19세기에 밝혀낸 이 현상은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이라고 부릅니다.

 

낮 동안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산란된 파란 빛이 하늘 전체를 채우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태양이 지평선 가까이 내려가면 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훨씬 길어져 파란 빛은 다 흩어지고 잔존한 빨간 빛만 우리 눈에 도달해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절입시각 2월 4일 오전 5시2분,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을 맞으면서 해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기준으로 2월 5일부터 해가 오후 6시 이후에 저물기 시작한다네요. 1월 말만 해도 오후 5시 반이면 어둑해지던 것이 2월 말에는 6시 20분이 넘어서야 노을이 지죠. 한 달 사이에 일몰 시각이 약 25분 늦춰집니다. 11월보다도 해가 길고, 일몰 시간은 하순에 접어들면 9월 수준까지 늘어나죠.

 

물리적으로 따지면 낮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2월은 해가 길어지는 달이 아니라 마음이 조금 늦게 어두워지는 달이기도 합니다. 노을을 보면 잠시나마 감상적인 기분에 젖으며 하루 마감 전 숨을 고르게 되죠. 

 

완전식품인 계란이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한다면 노을은 마음에 감상을 안깁니다. 마트에서 장바구니는 채우지 못했지만 하늘을 보며 마음을 채웠네요. 입춘이 지난 2월, 아직 봄은 이름뿐이지만 햇살은 우리와 좀 더 오래 함께 합니다.

 

온기가 좀 더 머무는 2월. 이달은 그런 달입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전태민 기자 tm0915@issueedi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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