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뷰] 열리며 닫힌다는 것, 새롭게 끝난다는 것

2026.02.28 16:24:22

그저 어렸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러 동네 가게로 달려가 씩씩하게 얘기했습니다.

 

"아줌마, 후리덤 최고로 큰 거 하나 주세요."

 

웹서핑을 하다가 접한 이미지를 보니 과거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네요. 눈물이 고인 건지 정말 아지랑이 같은 과거가 현재의 시야로 투영되는 듯합니다. 더 이상 생리대 심부름을 하지 않게 됐을 무렵, 아마 전 많이 자랐을 테고 어머니는 생리를 영원히 마치는 연령대로 점차 접어들고 있었겠죠.

 

 

오늘 '이리저리뷰'의 주제는 생리대가 아닙니다.

 

폐경 혹은 완경. 같은 현상을 두고 한쪽은 '닫혔다', 다른 쪽은 '완성됐다' 말합니다. 폐경(閉經). 닫을 폐(閉)에 지날 경(經). 의학적으로 한국 여성 평균 49.9세쯤 월경이 영구히 중단되는 현상을 지칭하며 대한폐경학회라는 관련 단체도 활동 중이죠.

 

그런데 23대 국립중앙의료원장을 역임했던 안명옥 산부인과 전문의가 '폐'라는 글자가 폐기물이나 폐건물의 폐할 폐(廢)와 음이 같아 좋지 않은 뉘앙스를 풍긴다며 여성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전환에 굳이 닫혔다는 표현을 써야 하느냐면서 완경(完經)이라는 명칭을 1980년대 후반에 제안했습니다.

 

월경을 마무리했다는 의미인 만큼 국립국어원은 현재 두 단어를 모두 사전에 올려두고 있는데요. 학계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에서도 찬반은 여전히 팽팽합니다.

 

지난 2024년 11월에는 보드게임 '메디컬 미스터리'에 완경이라는 번역어가 실린 것을 두고 온라인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게임을 출시한 코리아보드게임즈 측은 "언어는 시대에 따라 바뀌고, 의학용어조차 그렇다"며 용어를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죠.

 

물론 '폐'는 각기 다른 의미지만 두 단어를 대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닫히는 문, 들리지 않는 종소리


주제를 살짝 돌려 이달 17일 공개된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통폐합으로 문을 닫은 초·중·고교는 모두 153곳입니다.

 

초등학교 120곳, 중학교 24곳, 고등학교 9곳으로 전체의 78%가 초등학교였고 전남·강원 각 26곳, 전북 21곳, 충남 17곳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 학생 수는 532만3075명에서 501만 5310명으로, 약 31만 명 줄었고요.

 

이런 가운데 지난 26일에는 전북교육청이 내달 1일 자로 8개 학교를 추가 폐교한다고 밝혔습니다. 초등학교 5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으로 전교생 9명 이하에 그쳐 통폐합 필수 검토 대상이었던 학교들이죠.

 

지난해 2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미래지향적 교원정원제도 개편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면 단위 초등학교 하나가 폐교될 경우, 3년 내 해당 지역 인구가 약 410명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젊은 세대가 떠나고, 이들이 사라지면 그 지역이 노화하는 거죠. 입학과 졸업을 영원히 반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학교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면 얼마나 쓸쓸한 기분이 들까요?

 


대장간 마을의 초등학교


소나무와 진달래를 표상으로 삼고 '전진, 강인, 희망'의 밝은 긍지를 아이들에게 주창하던 이 학교 역시 단 한 명의 신입생도 받지 못해 2020년 2월 29일,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 학교의 교가를 작사한 전설적인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1911. 5. 25~2003. 12. 9)도 수업을 마친 후 남한강 굽이굽이 맑은 물가에서 노니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저 먼 세상에서 통탄하실 듯하네요.

 

이 학교는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야동리 소재 야동초등학교입니다. 한자 대장장이 야(冶)에 마을 동(洞)을 쓴 '대장간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1944년 개교 당시에는 평범한 학교 명칭이었으나 1990년대, 야한 동영상의 준말인 야동이라는 단어가 퍼지면서 전국구의 유명세를 타게 됐죠. 개명을 바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와중에 '야동초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여긴다'는 게시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면서까지 끝내 이름을 지켰지만 입학할 학생이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명목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라이벌 학교(?)는 부산 기장군의 대변초등학교(지금 용암초)였고요. 이외 다른 라이벌들은 전남 영광군의 대마초와 백수초, 경북 구미시 고아초,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초, 경기 수원시 장안구·성남시 분당구의 정자초 등이 있습니다.

 


애달픔 가고 다시 북적일 교정


전국 누적 폐교 3955곳 중 2609곳은 매각됐고 979곳은 임대 활용, 367곳은 여전히 방치 상태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잠식했던 교실에 다시 불이 켜지고 있는데요.

 

지난해 행정안전부와 교육부가 합동으로 '폐교재산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데 이어 올해부터 폐교 활용 우수사례 경진대회도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강원 삼척시에서는 폐교한 노곡분교가 82억 원 규모 지역특화 리조트와 웹툰 워케이션 센터로 바뀌고 있죠.

 

경남 밀양시에서는 옛 명례초등학교가 밀양 1호 작은 미술관 '누루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며 어르신들이 노인정 대신 산책 삼아 찾는 마을 사랑방이 됐습니다. 경북 경산시에서는 남산초 삼성분교가 경북온라인학교, 경기 성남에서는 폐교된 영성여자중학교가 핀란드의 아동·청소년 예술교육기관인 '아난딸로( Annantalo)'를 모델 삼은 문화예술교육센터로 탈바꿈했고요.

 

전북에서도 주목할 움직임이 있습니다. 올해 폐교하는 무주 무풍고등학교 부지를 태권도 선수 양성 목적의 특수목적학교인 전북국제태권도고등학교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죠. 태권도 성지 무주의 특색을 살려 해외 학생까지 유치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답니다.

 

그리고 야동초등학교. 76년간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에는 지금 사회적농장과 카페, 캠핑장이 자리하고 있죠. 풀무가 꺼진 대장간 마을에서 쉼터 마을로 변모했지만 다시 온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폐경과 완경. 닫을 閉와 마칠 完을 가리는 논쟁도 폐교의 사례처럼 사고전환이 필요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다음 목표를 세우는, 폐교(廢校)는 어쩌면 완교(完校)였는지도 모릅니다. 닫힌다는 것이 끝이 아니듯 버려두고 없애는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정금철 기자 ieeditor@issueedi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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