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뷰] '혼돈의 정국' 논란까지 나풀나풀 나빌레라

2024.11.30 18:28:42

은근히 강한 바람에 단풍도, 그나마 남았던 나무 위 눈송이도 모두 떨어집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는 첫 구절이 유명한 조지훈의 시 '낙화'가 떠오르네요. 낙화도 좋지만 제가 손꼽는 조지훈의 시는 승무입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는 현대 한국 무용의 개척자인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몸짓을 본 후 시상을 떠올렸다고 하죠. 1939년 12월호 문장(文章)지에 실렸고 지금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친필 초고를 소장 중이라고 합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추구했다는 찬사가 부족함이 없는 작품으로 낙화처럼 '나빌레라'가 포함된 첫 구절이 유명하고요. '나빌레라'는 나비와 고문체에서 받침 없는 어간에 붙는 용언어미로 추측을 나타내는 '~ㄹ레라'가 더해져 '나비 같다'는 의미입니다. 

 

승무를 위시해 유수의 작품들을 남긴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서 1920년 12월3일 태어나 1968년 5월17일 서울에서 향년 47세의 젊은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해 청록파로 불린 그는 민족 주체 의식을 강조한데 이어 '지조론'이라는 수필에서 당시 정치인들의 간교함을 질타하는 등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을 아는 수많은 이들이 존경했다고 합니다. 

 

 

각설하고 15년 전, 이달 8일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수년간 준비한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됐죠. 모두 3권 3000쪽 분량의 이 서적은 4000여 명의 주요 매국 행각과 광복 이후 행적을 담았는데 문화예술인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작곡가 안익태, 홍난파와 시인 서정주, 노천명 그리고 최승희입니다. 

 

최승희는 1940년대 일본군 위문공연에 나선 것은 물론 국방헌금도 수차례 내며 친일 행보를 보였다는 논란이 여전합니다. 대쪽 같은 지조의 조지훈이 최승희의 친일 논란을 알고 있었을까요? 만약 이를 알고 반감을 가졌다면 과연 승무를 이 세상에 남겼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이런 가운데 지난 27일 이준식 前 독립기념관장이자 前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부활을 바라는 공청회에 참석해 "친일파라고 고백해야 공직을 맡을 수 있다"며 지금 시국의 정치적 작태를 한탄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강일·조승래·김용만 의원과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이 주최, 광복회가 후원한 이날 공청회의 개최 취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친일재산 발굴을 지속 추진하자는 것이었고요.    

 

이날 주제 발표를 한 이 전 관장은 여기 그치지 않은 채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어둠의 세계에 묻혔던 친일파가 다시 부활했다"고 날을 세웠지만 전 이 역설에 반만 공감하렵니다.

 

왜냐면 이들은 어둠에 묻히거나 숨었던 적이 없으니까요. 티만 내지 않았을 뿐 언제나 주요직에서 큰소리를 내고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감출 생각도 없는 듯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던 호국영령들께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전태민 기자 tm0915@issueedi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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