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 사회] 비 오는 날이 많은 요즘입니다. 뭐 당연하죠. 이달 말까지 장마철이니까요. 근무 중에 추적추적 빗방울이 흩날리는 창밖을 보자니 뜬금없이 학창시절에 읊던 '내마음'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기억하는 독자 분들 많으시죠? 1970~80년대 만화책을 보면 풋사과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연모할 때 이 시구를 인용하던 장면이 꽤 많았습니다.
'내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반(反)도시적 경향의 전원파 시인이자 정치평론가였던 초허(超虛) 김동명 선생(1900.6.4~1968.1.21)이 1938년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파초(芭蕉)에 담긴 작품인데 1944년에 김동진 작곡가(1913.3.22.~2009.7.31)가 이 시에 곡을 붙여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죠. 김동명 시인이 김동진 작곡가의 국민학교 은사였는데 특히 '내마음'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산책 중에 문득 악상이 떠올라서 하루 만에 뚝딱 작곡했다는 일화가 유명하고 '가고파' '발자국' '뱃노래' '수선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김동진 작곡가에 대해 살짝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출생~사망 란에서 보셨겠지만 오늘은 이 분이 세상을 떠난 날이거든요. 미리 얘기하자면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닙니다. 평양 숭실중학교 5학년(현재의 고등학교 2학년) 때 김동환의 시 '봄이 오면'에 곡을 붙이면서 작곡을 시작했고 이어 숭실전문학교를 마친 후에는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진학해 바이올린 전공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이후 행적이 흠입니다.
만주국 신징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 활동 당시인 1942년 1월, 신징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일본·조선·만주·중국·몽골인의 협력을 일컫는 오족협화(五族協和)와 나라를 잘 다스려 모두 즐겁게 산다는 왕도낙토(王道樂土)의 만주'를 표현한 교향곡 '만주에 의한 찬가'를 연주했거든요.
또 같은 달에 대동아전쟁에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노래의 보급을 목적으로 조직된 만주작곡연구회에서도 활동하는 등 일제의 침략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해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에 이릅니다. 광복 후 평양음악대학 교수 재직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남쪽으로 넘어와 서라벌예술대학과 경희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죠. 남녘땅을 밟은 이후에는 권력에 아첨하는 어용 작곡가로 오명을 입습니다.
이때 조국찬가, 육군가를 비롯해 군가, 정부기관 상징가, 공공기관 사가, 회사 사가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수많은 곡을 쓰고요. 현재는 정부를 위시해 상당수 지자체 및 학교, 기업에서 김동진이 작곡한 곡들의 사용을 중지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움직임이 다른 곳이 있네요. 기업으로 한정해서 일부만 보면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을 포괄한 현대그룹(작사 조지훈)이 아직 김동진 작곡의 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포스코(1973~2011, 작사 박목월)와 대신증권(1978~1990, 작사 박목월), 제일제당(1974~1990, 작사 박두진), 옛 범한화재해상보험(LIG손해보험 거쳐 現 KB손해보험·1982~1988, 작사 조병화) 등은 현재 다른 사가를 만들었고요.
/이슈에디코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