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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Q) 에이가 네 개, 마르고 닳도록 쓰는 것

힌트는 로케트·썬파워…하이퍼맥스·벡셀

 

전일 책장 정리를 하다가 학창 시절 쓰던 영어사전을 다시 펼쳤습니다. 왜 청소나 정리를 하다 보면 꼭 목적에서 벗어난 짓을 하다가 시간을 버리는지 모르겠네요. (반박 시 저의 자동 패배) 공부하기 싫어 사전에 쓸데없이 모양을 내 적어둔 그때의 다짐들을 보며 어렸던 자신에게 한숨을 내뱉고 나서 머리말과 일러두기를 지나니 대망의 'A'가 나옵니다. 정리 도중에 아무 의미 없이 보는 영어사전이 이렇게 재밌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A 하나와 두 개의 뜻까지는 대충 전체적으로 기억이 나는데 A 세 개부터는 흐릿해집니다. AAA가 농업조정법, 미국 자동차 서비스 협회라는 건 결국 떠올랐지만 그 이후는 마치 하얀 그림자 같네요. A 네 개가 지닌 의미는 Amateur Athletic Association of America(미국 아마추어 운동 경기 협회), American Association of Advertising Agency(미국 광고업 협회) 등이었습니다.

 

A 네 개라 하면 우선 A4용지가 떠오르고 그 다음은 뭐 없나요? 건전지 규격은 AAA까지 사용해봤고요. 정리 도중에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이게 딴짓의 묘미인 만큼 기꺼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AAAA(AAAAM·LR8D425) 규격은 NM이라고도 부르는데 스타일러스 제품용이 대부분이고 국내에선 듀라셀과 에너자이저만 판매 중이랍니다.

 

자료를 모으다 보니 정작 건전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네요. 건전지(乾電池·Dry cell)는 이름 그대로 마른 전지입니다. 과거 전지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습식전지였거든요. 양극은 망간, 음극엔 아연을 쓰는 1차전지로 1870년 프랑스 화학자 르클라셰가 만든 전지가 현대 전지의 원형이라고 합니다.

 

1886년엔 독일인 카를 가스너가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처럼 이산화망간과 아연을 극으로 삼은 개량 전지 특허를 내 대량생산했고 1887년 일본에서 탄소봉이 들어간 현대식 건전지를 제조했답니다. 그러다가 미국이 1912년 건전지 규격 통일화를 논제로 앞세웠고 1919년에 현대화한 건전지 규격을 발표한 이래 1924년 수정안 확정을 거쳐 1959년의 최종 규격을 지금까지 따르는 중입니다. 

 

문득 또 하나의 기억이 스칩니다. 과거 우리나라 대표 건전지 브랜드는 로케트와 썬파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이름조차 듣지 못한 듯합니다. '짜사이' 작성을 위해 기업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답이 나왔습니다. 달갑지 않은 사연으로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죠.

 

로케트 건전지는 1970년대까지 국내 건전지시장의 사실상 독점자 위치였지만 1980년대 초반에 썬파워가 두각을 보이면서 양강 체제로 시장을 나눴다가 점차 해외 브랜드 공세에 밀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결국 2015년 2월 로케트전기는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시장 상장폐지, 청산절차를 거쳐 2016년 4월 폐업에 이르렀고요. 

 

이후 로케트전기는 P&G(프록터 & 갬블)에 로케트 상표권과 영업권을 매각했고 P&G는 하청업체를 중국으로 바꿔 현재에도 다이소 등에 건전지를 납품합니다. 옛 로케트전기 임직원 일부는 2015년에 알이배터리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2020년 6월에 크린랲이 이 업체를 인수해 제품을 내놓는 상황이고요.

 

이런 까닭으로 로케트라는 이름의 건전지는 중국산 제품이고 과거 국산 로케트배터리와 동일 제품은 현재 크린랲에서 생산해 다이소 등에 판매 중인 '쎈도리' '썬트라' '크린셀' '하이퍼맥스' 등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대학 졸업 후 1995년 로케트전기에 입사해 10년간 일하다가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됐지만 사측과 맞선 끝에 복직에 성공한 창사 이래 첫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썬파워는 현재 벡셀이라는 브랜드명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쪽도 상황이 복잡하긴 합니다 .썬파원의 근간은 서울통상인데 1977년 2월 사명을 서통으로 바꾼 후 1978년 썬파워 건전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사업 확장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면서 1996년 미국 듀라셀 사와 전략적 제휴로 썬파워 브랜드를 팔아 하청업체 역할을 했으나 1999년 국산 브랜드 '벡셀'을 시판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모기업 형편이 어려워져 2002년 벡셀 명칭을 내세워 홀로서기에 나섰다가 2005년 대기업집단인 SM그룹(SM엔터테인먼트 아님)이 인수했고 2010년 법인 분리를 통해 ㈜벡셀이 됐지만 올 4월 자동차부품회사에 흡수 합병되면서 ㈜에스엠벡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i벡셀은 프라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온라인 전용으로 판매하는데 가격이 국내산 벡셀보다 싼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 공장에서 제조한 벡셀 건전지에는 프리미엄이라는 명칭이 따라붙고요.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