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륙 후 열대저압부로 약화한 제14호 태풍 '풀라산'이 한반도를 향해 방향을 돌린 후 사흘간 폭우를 쏟아 이곳저곳 상흔을 남겼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국민 안전관리 일일상황과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을 참고하면 지난 20일 자정부터 21일 오후 10시까지 경남지역에 평균 287㎜의 폭우가 내렸는데요. 창원시가 529㎜에 달했고 다음은 김해시 426.7㎜, 고성군 417㎜, 사천시 403.3㎜ 순이었습니다.
특히 21일 경남 창원은 397.7㎜의 폭우로 1985년 관측 이래 일 최다강수량을 넘어섰고 김해(368.7㎜), 거제(348.2㎜), 양산(336.0㎜)도 좋지 않은 신기록이 나왔죠. 강원도 정선군은 시간당 최다강수량 29.7㎜로 9월 1시간 최다강수량 극값 1위를 찍었습니다.
오늘 오전 6시 기준, 호우·강풍·풍랑 탓에 7개 시도 46개 시군구에서 약 1000세대 1500명 넘는 인원이 대피했는데 경남이 260세대 374명으로 최다였고 경북 130세대 196명, 부산 24세대 50명, 전남 31세대 47명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주택 및 도로침수, 토사 유출, 땅꺼짐 현상과 옹벽 붕괴에 따른 피해도 있었고요.
올해 한반도 더위를 가시게 할 반가운 태풍으로만 여겼으나 예기치 않은 고통을 안긴 풀라산. 말레이시아의 제출명인 풀라산(Pulasan)은 람부탄과 같은 속인 열대과일입니다.
역시 말레이시아가 원산지인 람부탄보다 크고 어두운 붉은색인데 아이들 말랑이 장난감의 가시 같은 돌기가 껍질 전체에 촘촘하게 나있죠. 재배지와 파는 곳이 한정됐고 열대과일 특유의 향과 맛이 강해 람부탄의 상위 등급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계시나요? 이번 태풍의 명칭은 원래 풀라산이 아니라 야자수의 일종인 '룸비아(Rumbia)'였지만 지난 2018년 룸비아가 중국에 큰 피해를 입혀 제명되는 바람에 풀라산으로 대체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제출한 태풍명 '독수리'가 필리핀과 중국에서 100명을 훨씬 웃도는 사망자와 300억 달러가량의 재산피해를 입히자 양 나라에서 독수리의 제명을 요청하기도 했죠.
결국 올 2~3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태풍위원회 총회에서 제명이 결정돼 기상청은 지난 7월 태풍 이름 대국민 공모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10월25일에 당선자를 발표할 예정이고요.
원래 태풍 이름은 지난 1999년까지는 괌에 위치한 미국태풍합동경보센터(JTWC·Joint Typhoon Warning Center)에서 명명했으나 2000년부터는 태풍위원회(ESCAP·WMO Typhoon Committe)가 동식물 이름이나 자연현상 등 각 회원국들이 정한 이름을 모아 사용 중입니다.
태풍위원회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옛 아시아극동위원회)와 세계기상기구(WMO·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가 태풍 피해에 허덕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14개 나라의 태풍 관측 및 재해 방지 대책 논의, 비상시 협력 증진 도모를 위해 지난 1968년에 만들었죠.
창설 회원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라오스,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국, 미크로네시아, 북한, 베트남,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홍콩이 회원국이며 사무국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있습니다.
이왕 관련 자료를 찾는 김에 2000년부터 쓰지 않게 된 태풍 이름과 제출국, 대체명칭을 살펴봤는데요. 태풍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2000년에는 제명된 태풍 명칭이 없네요.
▲2001년 : 와메이(마카오)→페이파 |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