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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마음을 관통하는 비극…하은 그리고 혜영, 영철

사흘 전, 한 아이가 영원한 잠에 들었습니다. 영면(永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참 후에야 알게 될 만큼 어린 이 아이는 몸과 마음이 아픈 부모님을 두고 먼저 먼 길을 떠났습니다. 정상적인 감정으로 이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이 슬퍼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인천광역시 서구 심곡동 소재 한 빌라 4층에 살던 12살 5학년 아이 문하은 양은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발생한 화재로 닷새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시 같은 사고에 휘말려 하늘까지 집사를 따라 떠난 반려묘 '비누'를 품에 안은 영정사진 속 하은이는 인화지에 새겨진 그 미소처럼 장기기증으로 세상에 사랑의 온기를 남겼고요. 지난 5일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발인 때는 친구들의 눈물이 유족과 지인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바르고 착했던 친구로 추억에 남을 하은이는 얼굴 부위 2도 화상으로 심박동이 정지된 상태에서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가 이달 3일 눈을 감았는데요. 겨울방학이었지만 엄마는 일하러 식당에 갔고 아빠는 신장 투석으로 병원에 있던 중 발생한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특히 전기·가스비 등을 제때 내지 못했던 하은이 가정은 작년 9월 보건복지부 'e아동행복지원사업'의 위기아동 관리 대상이었으나 당시 맞벌이가구였던 탓에 소득 기준 초과로 제외됐다고 하죠.

 

현재 서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본부,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은 거처와 생필품, 후원금 등으로 유족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미 하은이가 세상을 떠난 후라 씁쓸하기만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비슷한 사고가 있는데요. 삼십여 년 전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동 한 연립주택에서 발생한 화재입니다. 필연으로 작성할 수밖에 없었던 건지 사고가 발생한 날이 1990년 오늘이네요.

 

 

1991년에 영유아 보육법 제정의 계기가 된 이 사고로 당시 반지하방에서 살던 5살 권혜영 양과 4살 권영철 군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짧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각각 경비원과 가사관리사로 맞벌이를 하던 부모는 치안이 불안하던 당시 유괴나 실종, 교통사고도 그렇거니와 혹시라도 살림살이로 아이들이 다칠까 싶어 방 안에서 식사를 하게끔 밥상을 차려둔 것은 물론 대소변을 볼 요강까지 놔두고 문을 밖에서 채운 채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작 방에 있던 성냥은 치우지 못했고 어린 남매의 불장난 도중 불씨가 옷장에 옮겨붙으며 아이들의 숨을 끊어버렸죠. 하루라도 일을 쉬면 생계에 지장이 생기는 서울생활에 쫓기던 부모가 살기 위해 했던 일이 정작 남매를 질식사로 하늘에 보내는 파국에 이르게 한 겁니다. 

 

불은 크지 않았지만 방문이 잠겨 탈출할 수 없던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문을 긁는 게 최선책이었던 거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지라 우리나라 가요계 거물이자 노래하는 투사로 자작가수(싱어-송라이터) 겸 사회운동가인 정태춘 씨가 1990년 7집 '아, 대한민국…정태춘5'에 수록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사 수정에 불복해 1990년 불법 카세트테이프로 발매했다가 1996년 정식 판매한 이 앨범 수록곡 중 세 번째 노래 '우리들의 죽음'은 혜영, 영철이의 가슴 저미도록 아픈 얘기를 7분 넘게 들려주죠.

 

노래 초반부 구슬픈 합창과 함께 시작하는 떨리듯 담담한 해설은 1990년 사고 발생 다음 날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를 정태춘 씨가 낭독한 건데 가사부터 선율까지 슬픔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슬픈 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미숙했던 90년대 초에 일어났던 사고와 유사한 건을 35년이 지나 다시 접한 현실이고요.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