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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향기로운 예술 경영, 배우 협동조합 '향인' 이금주 대표·서주성 이사

자립·자치적 활동 통한 예술인 활동 기회 확장 위해 작년 5월 조합 설립
20대부터 60대까지 다 연령층 배우들, 좋은 사람들 모여 좋은 방향으로 동행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지난해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1명이 예술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 수입은 평균 1281만 원. 이는 한 달 평균 100만 원 남짓한 수준. 예술활동 수입이 월 100만 원 미만이라고 답한 예술가는 72.7%로 집계.

 

수많은 예술가 중에서도 연극인들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가 더욱 뇌리에 박힐 만큼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열악한 연극판에서 생활고에 시달려 명을 달리한 연극인들의 일생이 신문지 상에서 극도로 축약돼 읽히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배고파야 예술'이라는 겉멋 든 말을 덮어 포장하지만, 예술이 생계수단인 사람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얘기일 뿐. 

 

이처럼 '연극=가난'이라는 섣부른 일반화가 자리 잡힌 현실에서도 연극판에 뛰어드는 후배들을 위해 배움의 길에 들어선 배우가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향기를 내며 '번개처럼 빠르게' 알뜰살뜰 후배들을 챙기는 오른팔도 있다. 배우이자 협동조합 리더격인 이금주 씨와 서주성 씨의 얘기다. 지난 7일 이 둘을 사당역 한 카페에서 만나 협동조합 '향인'의 현재와 각자의 인생사를 대리 체험한 듯 살필 수 있었다.

 

배우협동조합 '향인' 설립 계기는

 

 

배우협동조합 '향인'은 자립·자치적인 조합 활동을 통해 예술인의 활동 기회를 확장하고자 작년 5월 설립됐다. 향인의 이금주 대표는 후배들의 어려운 환경에 좀 더 도움이 되고자 조합을 세웠다. 협동조합이라는 특성에 맞게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개인 사업자로 협동을 통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향인 설립에 앞서 이 대표는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배울 수 있는 연극배우협회의 사투리 동호회에서 서주성 이사를 처음 만났고 설득 끝에 이사직까지 맡기게 됐다. 

 

협동조합의 이름 향인은 서 이사가 정했다. 서 이사는 "다들 옛것을 찾는다고 오해하곤 하는데,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라며 "당시 조합원들이 여러 개의 의견을 냈는데 투표를 통해 내가 정한 이름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조합이 어떻게 조합원들의 활동 기회를 확장시킬 수 있을까

 

이금주 대표는 향인의 실질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과 지역문화 개선에 기여할 만한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예술경영(Art management)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다.

 

예술경영은 말 그대로 예술단체나 기관의 경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과거에는 예술이 행위 위주였지만 현대는 도시문화를 기획하는 데 있어 예술을 결합시키고 있다. 이 대표는 대학원에 들어가 공연행정, 도시문화, 예술정책, 마케팅 등을 공부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학교에 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 때까지 있지만, 협동조합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돼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예전에는 다시 연극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절대 안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예술이 이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도움이 되는지 알기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한 것이 절대 후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주성 이사도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힘이 커지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현재는 문화를 통한 부가가치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 이사는 "문화가 도시의 힘이고 부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전주 영화제, 국제 영화제만 봐도 예술경영, 행정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그 도시를 일으키는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향인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배우들이 동행한다. 이에 대해 서 이사는 "향인은 현재 업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며 "이런 확신 덕분에 많은 이들이 투자한다는 입장으로 협동조합을 꾸려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표적인 향인 소속의 배우로는 연극판에서 뼈가 굵은 신철진 씨와 박혜진 씨가 있다. 지금 한창 하고 있는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속 장군봉 할아버지와 조순이 할머니로, DGB대구은행의 IM뱅크 광고 속 노부부가 바로 그들이다. 

 

지금 향인은 연극을 통한 수익 창출이 위주지만 향후에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배우들의 수익 안정과 지역문화 발전, 사회 환원에 대해 힘을 쓴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그중 하나는 연극 교육이다. 일반 시민들이 연극을 배워 내면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 중인 것. 

 

내년 2월께에는 향인의 두 번째 연극 '고물상 표류기'의 막을 올릴 예정이다. 고물상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람 냄새 나는 연극이라는 게 이들의 제언이다. 극본은 향인의 첫 번째 연극 '조선간장'의 극작가가 맡았다. 

 

협동조합 얘기는 이쯤 그만… 이 둘의 연극 인생은

 

-인터뷰에서 '연극=곰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다.
 

이 대표(이하 이): 불순물을 거르고 걸러야 진국이 되는 곰국처럼, 연극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아직 미완성된 사람들끼리 부딪히고 꺾여야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된다. 또 극단의 좋은 사람들끼리 있으면 좋은 방향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곰국도 좋은 뼈일수록 불순물이 덜 생기지 않는가. 

 

-연극 중에서는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이: 오현경 선생님, 박웅 선생님과 함께했던 봄날(1984년 초연. 당시 연출상과 미술상, 서울연극제 대상을 거머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서주성 이사(이하 서):  서울시립가무단(現 서울시뮤지컬단)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주연을 맡게 된 정글북이란 작품이다. 당시 나이도 20대 초반으로 세종문화회관을 엄청 뛰어다닌 기억이 난다. 이 작품 덕분에 MBC '뽀뽀뽀'에서 MC까지 추천받았었는데, 당시 뽀뽀뽀를 같이하던 이병준 선배가 EBS 번쩍맨이라는 캐릭터를 맡으면서 오디션을 추천해줬다. EBS에서 현재까지 '번개맨'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이 대표는 서 이사가 번개맨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데.
 

이: 번개맨이라는 캐릭터를 전혀 몰랐다. 나중에서야 유명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됐는데, 번개맨이란 캐릭터를 해서 그런지 서 이사는 언제나 젊게 사는 것 같다. 

 

서: '철들면 나는 늙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산다. 철없는 내가 좋다. 그래서 아이들과도 농구나 볼링, 온라인 게임 등을 종종 한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소소한 내기도 꼭 걸곤 한다. 

 

-무대에서 식은땀을 흘린 에피소드가 있는지?
 

서: 청춘예찬이라는 연극에서 급하게 의상을 갈아입고 나갔는데 지퍼가 열린 채였다. 하필 관객을 울려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지퍼가 열려 난감했다. 다행스럽게도 조명이 상반신만 따라와 대부분 관객들이 몰랐지만, 나갈 때쯤 몇몇 관객들은 눈치를 채더라. 

 

이: 처음 연극할 때 짓궂은 선배가 장난을 많이 쳤다. 항상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해서 화가 난 상태였다. 한 번은 연극 도중에 옷을 갈아입으러 갔는데 또 장난을 치더라. 그래서 탈의실에서 나가지 않고 버텼다. 연극에서는 1~2분 지체되는 것도 억만금의 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선배가 밖에서 많이 당황했다. 연극이 끝난 뒤에는 야단을 엄청 많이 맞았지만, 다신 장난을 치지 않더라. 

 

서: 장난하니까 나도 장난을 쳤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 객석을 보고 진지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에게 몰래 사팔뜨기 눈을 뜨는 장난은 소소한 편이다. 또 시카고 초연 때 록시 역을 맡은 전수경 선배 주변으로 6명의 배우가 앙상블을 넣으며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전 선배가 축하받을 일이 있어 얄궃은 장난을 준비했다. 앙상블 배우 6명 중 한 명이었던 나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생마늘을 먹고 전 선배에게 "우~ 록시"라는 대사를 열심히 외쳤다. 마늘 냄새 공격에 전 선배의 눈은 흔들리는데 음정은 하나도 안 틀리더라. 그래서 더 열심히 입김을 불어댔었다. 

 

-다들 후배들이 대선배인 두 분을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
 
이: 후배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차가 아주 많이 날 때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용인한다. 보통은 선배라고 한다.

 

서: 후배들이 형이나 오빠라는 호칭을 쓴다. 호칭이 편할수록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선배님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후배들이 공적인 얘기를 우선적으로 꺼내더라. 또 연극에서 호흡을 맞출 때도 불편해진다. 도저히 못 부르겠다는 후배들이 있을 경우 차라리 삼촌이라 불러달라고 한다.

 

-앞으로의 개인적인 활동은?

 

이: 우선 대학원 시험에 전념하고 있다. 또 내년 봄에 두산아트센터에서 작품 하나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다. 

 

서: 현재는 연출로 아마추어 배우들과 뮤지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1월 부터는 노동연극제에 나갈 뮤지컬도 연출 제의를 받았다. 내년에는 연출 외에도 배우로서의 노력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