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떠오르는 샛별' '충무로 입성' '충무로 기대주'. 배우들을 소개할 때 자주 쓰이는 수식어죠. 이처럼 우리나라 영화에 '충무로'는 빠질 수 없는 장소인데요. 이곳이 영화의 발상지로 자리하게 된 시기는 1910년입니다. '영화의 메카 충무로'라는 서적에 따르면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이 이곳에 세워졌는데요. 이어 1914년 '제2대정', 1916년 '경성극장', 1917년 '낭화관' '조일좌' 등이 잇따라 들어서며 충무로와 명동 일대는 자연스럽게 영화관 밀집 지역으로 형성됐습니다. 이런 극장 확장 흐름 속에서 일본식 극장 구조와 운영 방식을 갖춘 근대식 상영관 ‘와카쿠사 극장’도 세워졌고요. 해방 이후 여러 극장이 모인 충무로는 영화사와 현상소, 기획사, 인쇄소 등이 자연스럽게 들어서며 영화인들의 거점이 됐습니다. 와카쿠사 극장 역시 수도극장(1946년), 스카라극장(1962년)으로 두 차례 재단장을 거치며 단성사, 우미관과 함께 충무로 영화 문화권의 한 축을 이뤘습니다. 이때 당시 연간 1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는데요.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블록버스터 미국영화 수입, 멀티플렉스 중심의 영화산업 재편 탓에 충무로 영화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멀티플렉스가 집중됐던 강남권에 관객들이 몰리면서 충무로 속 옛 극장이 줄줄이 문 닫자 영화 제작사들도 강남으로 이전했고요. 이렇게 잊혀진 충무로가 다시 한번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28일 충무로에 공공 영화문화 공간인 '서울영화센터'를 개관했습니다. 지하 3층부터 지상 10층, 연면적 4806m² 규모로 조성된 센터는 166석, 78석, 68석의 상영관 3곳을 갖췄고요. 이곳은 전시실, 교육실, 공유오피스, 옥상극장, 영화카페 등 다양한 영화문화 시설이 한 공간에 들어선 복합 플랫폼인데요. 서울시는 "서울영화센터를 통해 영화인에게는 창작·산업 기반을, 시민에게는 영화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충무로를 영화산업·문화 중심지로 되살릴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4층 전시실에서는 영화와 연계한 기획전, 사진·오브제 전시, 체험형 콘텐츠 등이 열려 관람객이 영화의 배경과 제작 과정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데요. 추운 1월 어느 날, 충무로에서 약속이 있던 저는 추위를 피해 서울영화센터 4층 전시관에 방문해 '서울, 영화 그리고 캔버스'란 개관 팝업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다음 달 28일까지 진행 중인 이번 전시는 '서울을 영화 속에, 영화를 캔버스에 담았다'가 주제였는데요. 주최 측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은 수많은 영화적 기억은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시선과 결합해 새롭게 펼쳤다"며 "서울이라는 도시를 품었던 9편의 영화가 9명의 아티스트 손끝에서 재해석됐다"고 제언했습니다. 이곳에서 등장한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 ▲건축학개론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멋진하루 ▲벌새 ▲북촌방향 ▲올드보이 ▲연애의 온도 ▲태양은 없다 등인데요. 특히 8월의 크리스마스와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올드보이의 몇몇 장소는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했습니다. 공간이 크지 않아 30분 정도면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지만, 많은 영화를 다시 한번 추억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이번 수영씨에서는 앞서 언급한 추억의 영화를 짧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감독: 허진호 주연: 한석규, 심은하 개봉일: 1998년 1월 24일 줄거리: 서울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30대 남성 정원(한석규 扮)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며 죽음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어느 날 매일 단속 차량 사진을 맡기는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 扮)을 만나면서 삶의 욕심을 내기 시작하지만, 결국 세상을 떠난다. 이 사실을 모르는 다림은 언제나처럼 사진관을 찾지만 사진관은 닫혀있다. 여담: 허진호 감독은 가수 故 김광석의 영정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받아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시청 가능 OTT: 웨이브, 넷플릭스, 애플티비 건축학개론 감독: 이용주 주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개봉일: 2012년 3월 22일 줄거리: 스무 살 건축학과 승민(이제훈 扮)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음대생 서연(수지 扮)에게 반한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서울 정릉에 자취하는 서연은 같은 동네에 사는 승민은 서로 가까워진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승민은 고백하지 못하던 중 오해로 서연과 멀어진다. 이후 건축가가 된 승민 앞에 15년 만에 나타난 서연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둘은 함께 집을 만드는 동안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 당시를 추억하게 된다. 여담: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본 다음 요즘 이런 영화는 통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고 알려졌다. 시청 가능 OTT: 웨이브, 넷플릭스, 왓챠, 쿠팡플레이, 티빙, 유플모바일TV 내 머리속의 지우개 감독: 이재한 주연: 정우성, 손예진 개봉일: 2004년 11월 5일 줄거리: 건망증이 심한 수진(손예진 扮)은 편의점에서 두고 온 콜라와 지갑을 찾기 위해 다시 편의점에 찾았지만, 철수(정우성 扮) 손에 들린 콜라를 보고 자신의 콜라를 훔쳤다고 오해한다. 이후 오해는 풀렸지만 떠난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가방 날치기를 당한 수진을 철수가 도와주면서 재회한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되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건망증에 찾게 된 병원에서 수진은 자신이 알츠하이머 증후군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기억이 사라진 수진을 위해 철수는 처음 만난 장소로 데려와 수진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노력한다. 여담: 2001년 일본 단막극 '퓨어 소울: 네가 나를 잊어도(Pure Soul~君が僕を忘れても~)'가 원작. 각색에 참여한 김영하 작가는 제4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각색상을 받았다. 시청 가능 OTT: 웨이브, 넷플릭스, 왓챠, 애플티비, 티빙 멋진 하루 감독: 이윤기 주연: 전도연, 하정우 개봉일: 2013년 9월 25일 줄거리: 1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 扮)에게 빌린 350만 원을 받기 위해 희수(전도연 扮)는 경마장에서 그를 만난다. 이별 이후 결혼했지만, 두 달 만에 이혼하고 사업 실패에 빚까지 진 병운은 아는 여자들에게 돈을 부탁한다. 이런 병운의 행태에 희수는 기가 막히지만, 이를 돕기 위해 서울 곳곳을 같이 다니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불편한 하루'가 시작된 것. 여담: 타이라 아스코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며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분 초청작, 제33회 홍콩국제영화제 초청작, 제27회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메리칸 국제영화제 개막작. 시청 가능 OTT: 웨이브, 넷플릭스, 왓챠, 유플모바일TV 벌새 감독: 김보라 주연: 박지후, 김새벽 개봉일: 2019년 8월 29일 줄거리: 14살 중학생 은희(박지후 扮)는 1994년 대치동에서 방앗간을 하는 부모와 언니,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은희는 그런 가족에게 외면받은 뒤 친구 지숙과 물건을 훔치거나 노래방에 전전하다 그녀를 이해하는 김영지(김새벽 扮) 선생을 만나게 된다. 끊임없이 꿀을 찾아 날갯짓하는 벌새처럼 사랑을 갈구하며 헤맸던 은희에게 그는 한줄기 빛이었다. 그러나 그 해의 참사로 은희는 다시 한번 아픔을 겪게 된다. 여담: 김보라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또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한 1994년이 시대 배경이다. 시청 가능 OTT: 쿠팡플레이, 애플티비, 유플모바일TV 북촌방향 감독: 홍상수 주연: 유준상, 김상중, 송선미, 김보경, 고현정, 김의성 개봉일: 2011년 9월 8일 줄거리: 영화감독이던 성준(유준상 扮)은 서울 북촌에 사는 선배 영호(김상중 扮)를 만나기 위해 상경했다. 그러나 첫날 영호 대신 다른 이들과 우연한 만남을 보낸다. 이후 영호를 만난 성준은 영호의 후배 교수(송선미 扮)와 '소설'이란 술집에 방문해 예전 여자친구와 닮은 술집 주인(송선미 扮)을 보게 된다. 또다시 영호와 만난 성준은 전직 배우(김의성 扮)와 술을 마시는 가운데 교수가 합류해 네 사람은 다시 소설을 찾아간다. 성준은 이런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인지하지만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여담: 오! 수정에 이은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흑백영화며 2011년 제64회 칸 영화제에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 초청됐다. 같은 해 씨네21에서는 올해 한국영화 1위에 이 작품을, 홍상수 감독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했다. 시청 가능 OTT: 쿠팡플레이, 애플티비, 유플모바일TV 올드보이 감독: 박찬욱 주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개봉일: 2003년 11월 21일 줄거리: 오대수(최민식 扮)는 집에 가는 길에 납치당해 감금방에 무려 15년 동안 머물게 된다. 이후 자신이 납치당했던 곳에서 눈을 뜨게 된 대수는 한 일식집에서 요리사 미도(강혜정 扮)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대수는 자신을 납치한 우진(유지태 扮)을 만나고 우진은 5일 안에 감금의 원인을 알아내라며 미도와 자신의 목숨을 건 게임을 제안한다. 여담: 봉준호 감독이 박찬욱 감독에게 일본 만화 올드보이에 대한 실사화를 권유했다. 영화를 미리 받아보지 못한 원작 만화 작가 츠지야 가론은 결국 시사회 전날 자막도 없는 비디오 테이프로 시청했는데, 굉장한 영화 같다며 기뻐했다. 시청 가능 OTT: 쿠팡플레이, 애플티비, 유플모바일TV, 티빙, 넷플릭스 연애의 온도 감독: 노덕 주연: 김민희, 이민기 개봉일: 2013년 3월 21일 줄거리: 직장동료인 이동희(이민기 扮)와 장영(김민희 扮)은 3년째 비밀연애를 즐겼지만, 결국 헤어지게 된다. 나쁜 감정만 남은 그들은 서로의 물건을 부숴 착불로 보내고 커플 요금을 해지하기 전 요금 폭탄이라는 선물을 안긴다. 그러나 서로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탐색부터 미행까지하는 그들. 시도때도 없이 변하는 현실 연애의 모든 이야기를 보여준다. 시청 가능 OTT: 쿠팡플레이, 왓챠, 웨이브, 유플모바일TV 태양은 없다 감독: 김성수 주연: 정우성, 이정재, 이범수, 한고은 개봉일: 1999년 1월 9일 줄거리: 권투선수 이도철(정우성 扮)은 후배에게 지게 되자, 권투를 그만둔 뒤 관장 소개로 간 흥신소에서 같은 또래의 조홍기(이정재 扮)를 만난다. 이후 흥신소 사장에게 신임을 얻지만, 홍기가 돈을 빼돌리는 바람에 흥신소를 떠나게 됐다. 또 홍기를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아는 미미(한고은 扮)를 사랑하지만 그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도철은 이런저런 일만 전전하다 홍기, 미미 모두에게 결별을 고한 뒤 후배와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된다. 여담: 비트 제작진이 그대로 투입된 영화며 박성수 감독은 비트 촬영 당시 이 영화를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단발머리 사채업자로 등장한 이범수는 박성수 감독의 반대에도 그 머리를 정했다. 이후 박 감독은 이범수를 따로 불러서 옳은 결정이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시청 가능 OTT: 유플모바일TV, 티빙, 넷플릭스 한때 한국 영화가 태어나던 거리 충무로는 이제 극장을 뛰어넘어 상영·전시 공간으로 다시 관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서울영화센터를 중심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영화가 교차하는 이곳이 다시 영화인과 시민을 잇는 장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데요. 시는 많은 영화인과 시민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관람료를 오는 3월까지 무료로 운영할 계획이라니 지나는 길에 한 번쯤 가볍게 들러봐도 좋을 듯합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