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업무를 마친 후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뒤지다가 청경채를 찾았습니다. 냉동실에 있는 줄만 알았던 삼겹살이 기억났습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요리연구가이자 기업인인 백종원 씨가 소개한 동파육이 갑자기 너무 먹고 싶었는데요. 삼겹살을 사러 나가자니 그건 또 귀찮네요.
어쨌든 연상 기억법을 조금 익혔던 까닭인지 북송(北宋) 최고의 시인이자 학자, 정치가로 이름인 식(軾)보다 호가 더 유명한 소동파(蘇東坡)도 떠오릅니다.
관작을 내려놓고 귀향 이후 유유자적 산책 중인 소동파에게 지나가던 한 아낙네가 '벼슬 높던 지난날은 한바탕의 봄꿈이냐고 물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고사성어 일장춘몽(一場春夢).
1097년부터 3년간 유배생활을 할 때 큰 표주박 하나를 메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책을 하던 소동파의 모습을 본 한 노파가 놀라 안타까워하며 일장춘몽을 언급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어떤 얘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덧없는 인생을 한탄할 때 맞춤형으로 쓰는 일장춘몽의 유래와 글쟁이 소동파를 떠올리니 절로 백일장이 연상됩니다. 은근히 자주 치러지는 행사죠. 당장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만 해봐도 최근 열렸거나 개최 예정인 백일장(白日場)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 이상의 주제를 놓고 그 자리에서 곧장 시나 수필, 소설 등의 작문을 해 순위를 매기는 대회로 아직도 정부를 위시한 지방자치단체와 언론매체, 교육 및 문학 관련 단체, 기업체 등에서 활발히 개최하고 있죠.
알려진 대로라면 백일장은 태종 14년(1414년)부터 조선시대 지방 문교 진흥을 위해 마련된 정책으로 특정 주제를 받은 유생들이 시문을 작성해 치르던 시험에서 유래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 관청 수령이 과거시험에 비준하는 주제를 내놓고 즉석 시문을 짓게 해 장원에게 상을 주는 행사가 과거 낙방생과 지망생들에게 큰 인기였다고 합니다.
백일장의 기원설은 거의 두 가지 얘기로 귀결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거자백일장(擧子白日場)을 근거 삼은 얘기가 첫 번째입니다. 성균관에 간 태종이 540명가량 유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실시했다는 내용인데 거자는 과거(科擧)시험 응시 자격자, 백일은 밝은 대낮을 뜻한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 과거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한낮에 글로 자웅을 겨루는 시험이 백일장이라는 거죠.
두 번째 기원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보름달이 뜬 밤(망월·望月)에 작시(作詩)능력을 다투던 망월장을 한낮에 연다고 해 백일장이라 칭한다는 설이고요.
/이슈에디코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