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쓸 일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 가끔 책을 읽습니다. 방 구분하지 않고 들어가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잡은 다음 무조건 펼쳐 읽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교과서를 넘기며 '사람 많이 나오는 페이지 찾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가장 최근 본 책은 '만나며 친해지는 동물친구들'입니다. 별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는데 영화 같은 장면의 고래가 보입니다. 고래와는 친해지고 싶습니다. 배 타고 바다여행 떠났다가 혹시라도 물에 빠지면 고래가 입에 넣어 보호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무래도 흰색의 고래이다 보니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문호 중 한 명인 허먼 멜빌의 대표작 '백경'(白鯨, 흰 고래)이 떠오릅니다. 백경은 일본판 제목을 고스란히 옮긴 것으로 원제는 독자 분들 아시다시피 '모비 딕'입니다.
소설 속의 흰머리 향유고래 모비 딕(Moby Dick)은 거대하다는 의미의 모비(Moby)와 사내 녀석 내지는 남자 성기를 뜻하는 딕(dick)의 합성어인 만큼 백경은 원제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
고래잡이 일을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던 멜빌의 체험이 녹아든 모비 딕에는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며 생태부터 포경 후 처리에 이르기까지 고래에 대한 상세 설명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1851년 10월18일(공교롭게도 오늘), 영국에서 나온 초판 제목은 'The Whale'(고래)이었다고 하네요. 이렇듯 바다에서 고군분투하며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나온 출판작이었지만 당시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 탓인지 인세 등의 수익은 6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멜빌은 괴로운 말년을 보냈고요.
하지만 멜빌은 재평가를 받으며 작가들의 작가라는 칭송 속에 당대의 대문호로 자리매김했고 고생물학자들 역시 고래에 큰 영향을 미친 그를 기린 학명까지 만들었습니다.
지난 2010년 발견된 새로운 종의 거대 향유고래 화석의 학명은 바로 '리비아탄 멜빌레이'입니다. 마이오세에 서식했으며 현존 생물 중에는 향유고래가 가장 유사하다고 하네요. 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모비 딕 등장인물 중 1등 항해사인 '스타벅'에서 따온 건 모두 아시죠?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