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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변두리가 좋았던 그 시절…작별의 상봉

미국 대중문화계의 영향력 있는 시상식인 에미상 수상 등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극 초반 성기훈(이정재 分)이 경마 도박 중 강새벽(정호연 分)에게 소매치기를 당한 그 장소.

 

1985년 9월2일부터 38년 넘게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버스를 제공하던 상봉터미널이 이달 말 사라집니다. 일평균 이용객 2만 명을 웃돈 적도 있으나 동서울터미널이 등장하며 위세를 물려줬고 최근에는 하루에 2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만 이곳을 이용한답니다.

 

지속적인 이용객 감소에도 지역 주민 편의를 위해 운영을 계속해왔으나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 운영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가슴 아픈 안내문이 붙은 상봉터미널은 이제 시청각 자료와 기억으로만 남게 되고 내달 1일부터 터미널 광장 앞에 임시정류장이 설치됩니다. 2029년 준공 예정인 지상 49층 규모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고 하네요. 

 

 

상봉터미널은 서울 동부 지역 시외버스 터미널로 1989년까지 운영된 동서울터미널의 전신 동마장터미널이 발달에 따른 팽창을 가속화한 서울의 권역 확대에 휩쓸려 그나마 한산했던 외곽지역의 이점을 잃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며 서울시민들의 지탄을 받자 탄생하게 됐습니다.

 

변두리 지역의 이점 덕에 세상 빛을 보게 된 상봉터미널이 이제 이용객을 보기 힘든 변두리 터미널의 신세가 돼 어둠에 묻히게 되다니 세상사의 아이러니함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1990년대의 서울 중랑구 상봉동은 서울 동부 지역으로의 이동거점 삼아 강변북로와 천호대교가 이어진 와중에도 도심 개발이 미진했던 외곽 지역이었고 특히 강원도 이동 시 지리적인 장점을 톡톡히 발휘했습니다. 

 

아울러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구간 연장 및 고속버스 노선 추가, 군 장병들의 활발한 이용으로 생명력을 뽐냈으나 2호선과 맞닿은 동서울터미널의 활황과 시내 교통 연계에서 단점을 드러내며 암울한 쇠퇴기에 접어들게 됐죠. 

 

서울 중랑구 상봉로에 자리하며 서로를 만나게 해주던 상봉(相逢)의 장소, 상봉(上鳳)터미널이 서리같이 하얗게 센 상봉(霜蓬)의 백발처럼 아련한 과거를 남기고 작별의 인사를 합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떠오를 때 더욱 되새기며 기억하겠습니다. 안녕…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