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김수경의 영화·씨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
지난달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온 저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요. 당시 택시기사님은 비가 쏟아졌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전주에 찾는다는 것이 '멋지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본 영화는 '서울의 봄'이라는 운을 떼며, 자신이 당시 그 현장에 있던 군인 중 한 명이었다는 경험담을 얘기해주셨는데요. 지난해 말 개봉한 서울의 봄은 지난 1979년 12·12사태 당시 9시간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한 달 만에 10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영화가 매우 사실적이라 보는 내내 얼마나 분노했는지 심박수를 체크하는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죠.
택시기사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이제 곧 제대를 앞둔 병장이었는데, 노태우의 지시에 9사단이 움직이게 되면서 직접 병사들을 차출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는데요. 아직도 울면서 자신은 안 된다며 애원했던 군인들의 모습이 생생하다고 합니다.
다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자면 결국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장기 집권에 나서며 많은 국민이 희생됐는데요.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오늘 일어난 6·10민주항쟁 역시 전두환의 이런 행태를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전국민적 민주화운동입니다.
지난 1987년 1월 서울대생이었던 박종철 열사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사망했는데요. 누가 봐도 명백한 고문에 의한 사망이었지만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죠.
이에 분개한 국민들은 거리시위에 나섰는데요. 같은 해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 투사가 시위 도중 최루탄이 머리에 박히면서 사경을 헤매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 산발적이었던 민주화 투쟁이 단단히 뭉치게 됐습니다.
이 항쟁은 10일부터 29일까지 이뤄졌는데요. 특히 26일에는 전국 33개 도시 및 4개 군·읍에서 약 100만 명이 참가하며 6·10항쟁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29일 당일 군부 세력은 '6·29선언'을 발표했는데요. 이 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및 평화적 정부 이양의 실현 ▲대통령 선거법 개정 ▲김대중 사면·복권 ▲지방 자치 및 교육 자치의 실시 등이 담겼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국민들이 외쳤던 민주주의를 되새기고자 매년 기념식을 열고 있는데요. 이번 '제37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은 '오직 한마디,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주제는 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었던 양성우 시인의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에서 인용했다네요.
12·12사태는 앞서 말한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됐는데요. 만약 6·10민주항쟁에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분들은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을 추천해 드립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모습이 기폭제가 돼 열린 6월 항쟁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전두환 집권 당시의 벌어졌던 참혹한 사건들을 다룬 영화도 많은데요. 사건 연도별로 정리하자면 먼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가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은 1981년 부림사건 변호를 맡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군사독재 정권이 초기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당시 부산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 및 고문을 행한 사건을 다뤘습니다. 이때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에서 잡아갔는데, 서적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들이었다고 하네요.
'남영동 1985'는 민주화운동을 한 김근태 씨가 고문을 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는데요. 1983년 학생운동 출신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만들어 초대 의장을 맡은 그는 1985년 8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3일 동안 일명 '고문 기술자'로 불렸던 이근안의 주도하에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했는데요. 실제 남영동에 잡혀 고문을 당했던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감 없이 그린 사회고발 영화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