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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수영씨 이야기] "거꾸로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벤자민 버튼의 사랑 이야기

'영화를 좋아하는 김경의 화·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스포일러 주의)

 

 

 

영화 세븐(Se7en), 파이트클럽, 조디악, 나를 찾아줘 등 수많은 명작을 만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입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집필한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영상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벤자민 버튼)'입니다.

 

데이비드 핀처의 작품 대부분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뿜어내지만, 벤자민 버튼의 경우 밝고 경쾌한 분위기와 함께 감동까지 선사하는 영화인데요. 이 작품은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미술상, 시각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습니다. 

 

원작은 '톰 소여의 모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인생은 슬프게도 최고의 대목이 제일 처음에 오고 최악의 대목이 맨 끝에 온다"라는 발언에서 착안해 쓰였는데요. 작가는 단편에서 인생의 맨 끝인 노년기를 가장 처음, 인생의 맨 처음인 유아기를 마지막에 배치해 삶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 외에도 국내에서는 이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 나왔는데요.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을 맡은 '벤자민 버튼'입니다. 이달 30일까지 공연을 올려 소개하기 늦은 감이 있지만요. 이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은 목각인형인 '퍼펫'을 통해 젊어지는 벤자민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벤자민 역을 맡은 배우들은 겉모습과 정신이 동일한 35살 벤자민 외에 퍼펫을 조종하며 늙고 젊은 벤자민을 표현하죠.

 

영화와 뮤지컬의 원작이 단편인 만큼, 이 두 작품과 원작은 큰 줄기 외엔 많은 부분이 다른데요. 우선 원작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태어나자마자 큰 키의 깊은 주름, 하얀 수염을 갖게 된 벤자민은 70대 노인 어투로 문장을 구사하며 간호사와 아버지 로저 버튼을 놀라게 합니다. 

 

부모는 집안의 명예 실추를 걱정하며 어떻게든 벤자민을 어리게 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데요. 그러나 벤자민의 정신과 몸은 노인이기 때문에 장난감을 갖고 노는 대신 백과사전을 몰래 읽었으며 또래 아이들보다 할아버지와 갖는 대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또 몰래 아버지의 시가를 몰래 피웠고요. 

 

그는 놀랍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색이 짙어지며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목소리 톤도 바뀌는 등 젊어지게 됩니다. 이후 사교클럽에서 몽크리프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 군에 입대해 승승장구하는데요. 계속해 젊어지는 외모와 정신은 그를 사교계로 이끕니다. 즐거움이 주는 쾌락을 거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점점 어려지는 신체와 정신을 멈출 수 없던 그는 결국 70살에 아기 벤자민이 돼 침대에서 세월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 채 암흑을 맞이합니다.

 

 

영화와 뮤지컬 속 벤자민은 원작 벤자민과 다르게 80세의 외모를 지닌 어린아이로 태어나는데요. 희끗한 머리와 주름만 있을 뿐 보통의 아기들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또 소설은 그의 삶을 나열하며 인생을 다시 되짚는 계기를 주지만 영화, 뮤지컬은 '사랑'에 초점을 맞춥니다.

 

영화에서는 단추공장으로 호황을 누리던 그의 아버지 토마스 버튼이 아내가 벤자민을 낳고 죽자 그를 양로원에 버리는데요. 양로원을 운영하는 퀴니는 벤자민을 양아들로 삼아 온갖 노환을 앓는 그를 정성껏 키웁니다. 

 

벤자민은 클수록 몸은 젊어지지만, 정신은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첫사랑 데이지 외에도 인생과 피아노 치는 법을 알려준 양로원 할머니, 처음으로 연애감정을 느끼게 해준 애벗 부인, 도전 정신과 전우애를 일깨워준 캡틴 마이크와 선원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러다가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성공했지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첫사랑 데이지와 재회합니다.(데이지의 사고 장면은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인 만큼, 한번 보는 걸 추천합니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행복한 삶을 살지만, 벤자민은 점점 젊어지는 자신이 데이지와 딸 캐롤라인에게 부담일 될 것이라고 느껴 결국 이 둘을 떠나게 되는데요. 영화는 임종 직전인 데이지와 캐롤라인의 대화를 통해 벤자민을 추억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결국 벤자민은 치매가 걸린 어린아이가 됐고, 아동국에서는 벤자민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름인 데이지를 데려오는데요. 갓난아이가 된 벤자민은 늙은 할머니가 된 데이지 품에서 눈을 오랫동안 맞춘 뒤 세상을 떠납니다. 

 

 

뮤지컬 속 벤자민 역시 아버지의 버림을 받아 재즈클럽 '마마'에서 마마의 돌봄을 받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노래를 부르는 9살 소녀 블루를 만나게 됩니다. 몸이 늙어 휠체어 신세인 벤자민은 자유로운 블루를 보며 사랑을 꿈꾸는데요.

 

떠난 블루를 보며 속상해하는 벤자민에게 마마는 인생에서는 '스윗 스폿(Sweet Spot, 테니스와 야구처럼 라켓이나 배트를 사용하는 스포츠에서 공을 치기에 최적의 지점을 일컫는 말. 작품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순간을 의미.)'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고 위로합니다.

 

벤자민은 온갖 역경을 겪는 블루 곁에서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하는데요. "나는 이미 늙어봤잖아. 난 주름을 사랑할 줄 알아"라면서 그녀를 계속 위로하고요.

 

뮤지컬은 어린 소년이 된 벤자민이 치매를 앓는 노인 블루를 위해 아들과 함께 연극을 하며 그녀의 기억을 계속 일깨워주는 '극중극'으로 진행되는데요. 이런 노력 덕분에 블루는 단 몇 초 정도 벤자민을 떠올리지만, 잠시나마 자신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마저 행복해 하는 벤자민의 모습은 짙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시간이 소재인 만큼 원작과 영화, 뮤지컬은 모두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줍니다. 거기서 영화와 뮤지컬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지만, 또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사랑'을 전달하고요. 사랑에 대한 영화와 뮤지컬은 차고 넘치지만, 인생을 거꾸로 사는 주인공을 통해 다시 다룬다는 점이 이 두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사랑을 아쉬워하고 사랑하기 급급한 현실이 낭비라고 외치지도 않는데요. 두 콘텐츠에서 자신만의 스윗 스폿을 외치며 살아가는 다른 인물들의 모습 역시 깊은 여운을 줍니다. 

 

이번 주말부터 전국에 장마 소식이 들리는데요. 비 오는 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따듯한 차 또는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이런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꼭 벤자민 버튼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