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김수경의 영화·씨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
지난달 30일 올해 첫 전국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폭염주의보는 최고 체감온도 33도를 웃도는 상태가 이틀 이상 이어질 때 내려집니다. 정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기운이 빠지는 요즘인데요.
이런 여름마다 누구든 한 번쯤 공포, 스릴러, 좀비 등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영화를 찾게 되죠. 최근 화제가 된 개봉작 중 하나인 '28년 후'도 좀비물이고요.
지난달 19일 개봉한 이 영화는 상영하기 전부터 관객의 관심을 한껏 받았습니다. '달리는 좀비'를 처음 선보이며 우리가 전형적으로 아는 좀비의 기틀을 만든 '28일 후'의 무려 18년 만의 속편이기 때문이죠.
28일 후 감독과 각본가인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는 이번 속편을 위해 다시 손을 잡았고요. '오펜하이머'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 및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기대치를 더욱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개봉 후에는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에 대한 의견이 팽팽해졌는데요. 좀비라는 변개체를 마주쳤을 때의 스릴과 긴박함, 사투가 극히 적어 좀비물만의 재미를 찾아볼 수 없다는 반응과 전형적인 좀비물과 다른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는 '극과 극'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에 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인 걸로…….)
여하튼 저는 오랜만에 등장한 좀비영화가 큰 화제를 몰고 있어 기쁜데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같은 고전 좀비물부터 꽤나 여러 좀비물을 즐겁게 봤기 때문입니다. 겁쟁이라서 매우 여러 번, 크게 놀라지만 그때 나오는 도파민에 중독됐나 봅니다.
이번에 제가 소개할 영화는 좀비물 '차가운 것이 좋아!'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불면의 밤' 섹션에 초청돼 접할 수 있었는데요.
좀비병 엔데믹 시대에 좀비를 소탕하는 계약직 공무원 '사나희'는 정규직이 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예비 시모 말에 정규직에 목숨을 걸며 어김없이 좀비 찾기에 나섰는데요.
그러던 중 좀비에게 물릴 뻔한 위기에서 한 좀비의 도움을 받게 돼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이 아는 좀비는 감정도, 생각도 없고 말을 할 수 없는 괴생명체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된 나희는 생각하고 말하는 좀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요.
그저 꿈도, 목표도 없이 시집을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던 나희에게 그는 큰 자극이 됩니다. 그에게 '조은비'라는 이름을 붙여준 나희는 햇빛과 더위에 취약한 좀비를 신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추운 알래스카로 몰래 옮기는 일명 '좀권(좀비+인권)' 단체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데요.
나희는 그 과정에서 많은 위기와 갈등을 겪었지만, 오랜만에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일들을 시행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 사랑 없는 연애를 이어갔던 그에게 은비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데요.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설렜는데, 그게 좀비와의 사랑이어서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영화를 연출한 홍성은 감독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어 온 프로젝트에 자신이 참여해서 영광"이라며 "여러 소재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논쟁을 지켜보며 '좀비와 뽀뽀하게 되면 어떨까?'라는 로그라인에서 이 영화의 서사를 쌓아갔다"고 설명했죠.
홍 감독이 말하는 인권위 프로젝트는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인권영화 프로젝트'인데요. 인권을 보다 친숙하고 감성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인권위 첫 작품은 박찬욱, 임순례, 박광수 등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형식의 '여섯 개의 시선'인데요. 이 작품은 외모지상주의, 영어 조기교육, 장애인, 성범죄자 신상공개, 외국인 노동자 등 인권 문제를 짚은 6개의 독립 단편들로 이뤄졌습니다.
이후 인권위는 탈북자, 성차별, 다문화, 노인 등 여러 인권 이슈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에 집중하다가 이번 '차가운 것이 좋아!'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인권을 다루는 작품에도 힘을 주고 있는데요. 차가운 것이 좋아의 경우 좀비물로만 보여질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청년들의 고민을 잘 풀어냈죠.
이와 같은 맥락으로 프로젝트의 14번째 작품인 이옥섭 감독의 '메기'도 꼽을 수 있는데요. 겉보기에는 "이 영화가 어떻게 인권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계속 의심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재치 있게 녹여냈습니다.
또 지난 2019년에는 세월호 참사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에도 도전했고요. 기존 인권 문제에서 더 나아가 K-팝이 흥행하면서 생긴 '아이돌 인권' 이슈를 그려낸 '힘을 낼 시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권영화 프로젝트는 단순히 문제 제기를 넘어 우리 사회 속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는 사소한 것까지 다루는 실험장이 된 셈인데요.
차가운 것이 좋아! 역시 좀비 장르의 틀을 빌렸지만, 곱씹어 보면 이상할 만큼 우리 사회 속 인권을 새롭게 풀어내며 마음 한편을 시원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개봉일은 미정인데요. 서둘러 입소문을 타 영화관에서 만나길 기대해 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