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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포항 그곳, 시원한 물회보다 서늘한 경고

 

길고도 뜨거운 여름철의 포항을 찾아 시원하게 즐겼던 물회입니다. 몇 해 전인지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 얼음장 같은 육수, 갓 잡은 싱싱한 횟감, 매운 양념과 뒤섞인 날것 그대로의 시원한 강렬함은 뇌리에 여전하네요.

 

열기에 맞서 냉기를 찾는 억척스러운 역동성은 포항이라는 도시의 기질을 고스란히 닮았습니다. 겨울의 문턱에 서서 남은 올해의 마지막 불씨를 차분하게 지킬 11월, 남은 두 달의 여백을 바닥에 깔고 내년의 새 걸음을 준비해야 할 이 시기에 포항에는 유독 큰 이슈들이 많았죠.

 

지난 1990년 11월 10일, 축구전용구장 하나 없는 나라가 월드컵에 출전한다는 이탈리아 언론의 조롱에 무척 화가 난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주도로 관중석과 경기장이 가까운 형태의 우리나라 첫 축구전용구장(지금 포항스틸야드)을 준공했습니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 역사에서 꽤 많은 최초의 의의를 새긴 곳이기도 하죠. 그 중심에는 포항제철소(지금 포스코)가 있고요. 1973년 6월 9일, 이곳 제1고로에서 우리나라 최초 근대적 일관제철소의 쇳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철광석 투입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한 곳에서 처리하는 이 체계는 1960년대 당시 한국 경제의 무게추를 경공업에서 중화학으로 단숨에 돌려놓았죠. 한국철강협회가 이날을 기려 매년 6월 9일을 '철의 날'로 지정할 만큼 국가 성장의 근간이었답니다.

 

아울러 2024년 11월, 포항시는 국내 최초 수소특화단지 지정을 추진하는 등 첨단 과학 도시의 위상을 확립하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같은 달, 포스코실리콘솔루션 실리콘음극재 공장 종합 준공 등의 소식도 전했고요.

 

하지만 이 빛나는 최초의 성취 뒤에는 최초와 최후의 구분을 둘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사고의 기록도 몰려 있습니다. 2010년 11월 12일, 포항 인덕동 소재 한 요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죠. 화재 원인은 1층 사무실 분전반 주변 전선의 스파크였죠. 미흡한 화재 안전 대비와 총체적 난국의 시설 점검이 부른 명백한 인재(人災)였습니다.

 

2017년 11월 15일에는 포항 북구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났죠.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 중 역대 두 번째 규모였고 진원 깊이가 4㎞로 얕아 지표면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며 약 672억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의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정부 조사단 조사 결과, 이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근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유발한 인위적 촉발지진(Induced Earthquake)으로 파악됐다는 거죠. 이후 포항촉발지진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심에서는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되는 등 혼란은 아직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지난해 11월 10일, 포항제철소 3파이넥스공장의 화재 사고도 세간에 알려졌는데요. 4km 떨어진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도 화재가 있었고 14일 뒤인 11월 24일, 복구 정비를 마친 직후 같은 곳에서 다시 불이 나 근로자가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며 악재의 크기를 키웠습니다.

 

2017년 오늘, 지면보다 더 크게 시민들의 마음을 갈라놓은 지진의 충격을 기억한 포항시는 2019년 이날을 '포항시 안전의 날'로 지정하며 다시금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안부터 바깥까지 다졌죠.

 

포항은 '최초'라는 타이틀이 주는 희열의 맛보다는 물회의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매콤함 같은 근본과 극복의 기억을 다셔야 합니다. 최초는 한 번이지만 안전은 항상 만전을 기해야 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가치니까요.

 

최초의 기록처럼 모든 사고와 화재 기록을 통해 안전제일의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을 연이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시설을 지켜 '최고 안전 도시'라는 단단한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그날까지의 노력을 응원합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