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복입니다. 한 해 더위가 본격적으로 등 뒤에 붙는 세시의 한 고비죠. 더구나 올해는 오는 25일 중복과 내달 14일 말복 사이가 스무날이나 벌어지는 '월복(越伏)'이라 달력상 삼복 기간이 통상보다 더 길게 늘어지는 해라고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복날의 '복'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려 하는데요. 우선 한자로만 놓고 보면 복날의 복은 엎드릴 복(伏)입니다. 글자를 뜯어보면 사람 인(亻)과 개 견(犬)이 나란히 붙은 회의자로, 흔히 개가 사람 곁에 납작 엎드린 모양처럼 풀이되고요. 여기서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이 나왔다고 보죠. 머리를 조아리는 굴복(屈伏), 무릎 꿇는 항복(降伏), 일은 않고 몸만 사리는 복지부동(伏地不動)까지 죄다 눌리고 꺾인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자전을 펴면 순서가 뒤집히죠. 후한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이를 맡을 사(司) 한 글자로 풀었습니다. 청나라 단옥재는 이 사(司)가 지금의 엿볼 사(伺)라 짚은 뒤, 개가 사람을 엿보다 짖는 것이 이 글자의 회의라 주석하면서 엎드리다(俯伏)와 숨다(隱伏)는 거기서 뻗은 파생 의미라고 못 박았고요. 그러니 길목에 몸을 숨긴 매복(埋伏), 때를 노리는 복병(伏兵), 얘기 속에 미리 깔아 둔 복선(伏線)은 이 글자에서 뒤이어 뻗은 또 다른 가지입니다. 엎드린 모양새는 꺾인 자세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살피고 기다리는 자세로도 번진 거죠. 단옥재가 '이 글자는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지 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적어둔 대목도 이 자리에서 곱씹을 만합니다. 삼복 정한 간지 일 년 중 가장 더운 이 며칠에 왜 하필 '복'이라는 글자가 붙었을까요? 답은 동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변화 양상을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다섯 기운으로 압축해 설명하는 이론인 오행(五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름은 불(火), 가을은 쇠(金)에 속하죠. 그런데 한여름의 불기운이 워낙 드세 뒤따라오려던 가을의 쇳기운이 그 앞에 세 번 눌려 엎드린다고 봤습니다. 그 세 번의 엎드림이 바로 초복·중복·말복이고요. 이 풀이는 근거 없는 현대의 민간어원이 아닙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달린 주석 정의(正義)가 옛 역서 역기석(曆忌釋)을 끌어와 '복(伏)이란 무엇인가. 쇠 기운이 엎드려 숨는 날'이라고 규정한 후 '입추에 쇠가 불을 대신하는 까닭에 경일(庚日)에 이르러 반드시 엎드리니 경이 곧 쇠인 고로 복이라 한다'고 짚었죠. 역시 쉽게 이해하기 힘든 풀이지만 같은 주석은 복을 두고 '엎드려 숨어 무더위를 피하는 것(伏者, 隱伏避盛暑也)'이라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복날은 십간 가운데 오행상 금(金)에 배속되는 '경(庚)'이 든 날이 기준입니다. 초복은 하지 뒤 세 번째 경일,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 뒤 첫 경일. 쇠(庚)가 불(火) 앞에 엎드리는 날이라는 풀이가 글자 그대로 부합하죠. 삼복이 24절기에 들지 못하고 잡절(雜節)로 분류되는 것도 해의 위치가 아니라 이 간지(干支)를 셈해 날을 잡는 탓입니다. 맞설 수 없다면 피하는 지혜 사기 진본기에는 복날의 첫 기록도 함께 남아있죠. 기원전 676년 진(秦)나라 덕공 2년 '처음으로 복을 두고 개로써 고를 막았다(初伏, 以狗禦蠱)'는 단 여섯 자로, 주석들을 보면 여기서 고(蠱)는 사람을 해치는 열독악기(熱毒惡氣)를 지칭합니다. 끔찍하지만 그중 하나가 인용한 연표에는 사(社)에 제사를 올린 뒤 개를 찢어 성읍의 네 문에 내걸었다고 적혀 있고요. 먹으려고 잡은 개가 아니었습니다. 양(陽)의 짐승인 개를 성문에 걸어 더위의 독기를 물리치려 한 벽사(辟邪)의 제의였죠. 무더위에 고기로 기력을 보충하는 풍경은 그보다 뒤의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에는 복날 황제가 수행 관리들에게 고기를 내렸다는 대목이 나오죠. 적어도 한대 궁정에서는 복날 고기를 나누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오늘날 복날에 고기붙이로 국을 끓여 먹는 풍속인 민간 복달임이 여기서 직접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뜨거운 날, 자연도 사람도 잠시 엎드립니다. 들판의 곡식은 땡볕에 몸을 낮추고, 사람은 그늘을 찾아 한낮을 피하죠. 이 납작한 자세는 패배가 아니라 매복한 병사가 칼을 갈고 복선이 결말을 기다리듯 가을을 기다리는 채비와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그 글자가 엿보는 자세에서 출발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고요. 노자는 도덕경 58장에서 '복은 화가 엎드려 숨어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복 속에 화가 잠복해 있다면, 화 속에도 복이 기대어 있다는 뜻이겠죠. 올여름 긴 삼복더위 앞에 잠시 엎드리고 나면, 반드시 다음 계절이 찾아오는 것처럼요. "복이여, 화가 엎드려 숨어 있는 곳이로다(福兮禍之所伏)." - 도덕경 58장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