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6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군인이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했습니다. 의견 표명의 계기는 12·3 비상계엄 당시 일부 병력이 명령의 정당성을 판단하지 못한 채 동원된 사례로 현재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 14건이 발의된 상황이고요. 인권위는 지난 2001년 설립 이래 군 복무 환경 개선에 여러 차례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다만 최근 취객 체포 경찰 징계 권고, 교사 인권 침해 진정 전 건 반려,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 등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행보는 꾸준히 논란을 부르고 있죠. 사병 급여 격세지감…불어난 만큼 늘어난 위험 꼰대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사실 2000년대 이전 군대에서 인권위가 언급한 대로의 기본권은 군인들에게 멀고도 낯선 용어였습니다. 가장 단적인 지표가 월급이죠. 1970년 병장 평균 월 급여는 900원이었는데 그때 쌀 반가마니 2880원, 짜장면 한 그릇은 100원이었습니다. 1980년 3900원, 1990년 9400원으로 20년이 흘러도 만 원을 넘기지 못하다가 2000년에야 1만3700원이 됐고요. 노무현정부 시절 처음 대폭 인상이 시작돼 2006년에 63% 올랐고 2007년 8만8600원에 도달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동결됐습니다. 변곡점은 2017년으로 문재인정부 첫해 21만6000원이던 병장 월급은 이듬해 40만5700원, 2022년 67만6100원까지 상승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병장 200만 원' 공약을 내걸었고 지난해 기본급 150만 원, 장병내일준비적금 정부 매칭 55만 원을 합산하면 실질 월 205만 원을 통장에 넣을 수 있게 됐죠. 올해는 동결이지만 50년 넘게 20만 원을 넘지 못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월급뿐 아니라 간부 숙소 1인 1실, 병사 생활관 2~4인실 개선, 선택 급식, 휴대전화 사용, 화상 면회 등 숫자와 제도만 놓고 보면 군 복무 환경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지난 3월 6일 내놓은 '금감원, 국방부와 군장병의 건전한 금융활동 협력 추진'이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보면 정식 등록된 상위 30개 대부업체의 군 장병 대출 잔액은 444억 원이었으며 이 중 현역병이 242억 원으로 54.5%였습니다. '충성론' '병장론'이라는 친근하면서도 자극적인 광고 문구를 들이밀며 대출 한도 1000만~1500만원, 연 이자율 17.9~20%가량의 법정 최고금리를 덮어씌웠죠. 여기 대응해 금감원은 복무 주기별 맞춤형 금융교육에 나서 입대 직후에는 도박과 고위험 투자의 위험성, 복무 중반에는 신용관리, 전역 직전에는 재무 설계를 교육한답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직접 광주 제31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불법도박 피해 예방 특강을 한 것도 이례적인 행보였죠. 14년 전 황금 마늘밭은 결국 황무지로… 병장 월급이 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 사병의 도박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급여가 늘어난 데다 스마트폰까지 쓸 수 있게 되면서 일부 사병들의 불법 도박 적발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죠. 판이 커질수록 돈은 엉뚱한 곳에 묻히고, 사고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기 마련입니다. 정확히 14년 전 오늘, 전북특별자치도의 한 마늘밭에서처럼요.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축령마을 한 마늘밭에서 5만 원짜리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굴착기로 파헤친 밭에서 나온 금액은 총 110억7800만 원. 돈다발은 비닐로 포장된 채 김치통, 실리콘통, 양은찜통에 나뉘어 약 1미터 깊이에 묻혀 있었습니다. 출처는 불법 도박사이트였습니다. 충청남도 출신 형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국 칭다오에 각각 서버와 콜센터를 두고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해 수백억 원을 벌어들였죠. 이들은 매형 이 모 씨에게 돈을 맡겼고, 이 씨 부부는 2009년부터 열두 차례에 걸쳐 112억여 원을 건네받아 처음엔 아파트 장롱, 화장대 밑, 금고에 보관하다가 땅을 사서 묻으라는 처남 지시에 김제 토지 2필지를 1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밤마다 삽과 곡괭이로 흙을 파고 돈을 묻은 뒤 그 위에 마늘, 고추, 들깨를 심었죠. 사건의 발단은 매형의 욕심이었습니다. 처남 몰래 2억4000만 원을 빼서 쓴 이 씨가 밭에서 나무를 옮기던 굴착기 기사 안 씨에게 덤터기를 씌우려 했으나 안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모든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처음 7억이라던 이 씨의 말은 12억, 24억으로 바뀌다 결국 110억 원 넘는 돈이 세간에 알려졌고요. 당연히 돈은 전액 국고로 환수됐습니다. 법무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범죄수익환수 포상금 제도, 이른바 '마늘밭법'을 만들었고 신고자 안 씨에게는 겨우 고작 꼴랑 2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안 씨는 돈과 얽힌 온갖 억측에 시달리며 월 700만원을 벌던 일을 그만뒀고, 부인의 식당도 문을 닫았죠. 조폭 개입설에 떨며 머리맡에 가스총을 두고 잤다는 안 씨는 이후 간암과 대장암으로 투병하는 일생 최악의 고초까지 겪었고요. 정직한 신고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런 일에 두 팔 걷어 나서야 할 곳은 인권위가 아닐까요? 반세기를 넘기며 군 복무 환경은 분명 나아졌고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돈이 생기면 유혹도 따라온다는 교육도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14년 전 우리는 김제 마늘밭에서 불법도박으로 얼룩진 110억 원의 검은 돈을 봤습니다. 오늘날 20대 사병들은 스마트폰으로 '충성론'과 '병장론'이라는 이름의 검은 광고를 보고 있죠. 더러운 돈이 묻혔던 자리에서는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는 걸까요? 마늘밭의 5만 원 권 신사임당은 국고에 귀속됐지만 김제의 그 밭은 황무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어린 사병들은 장단을 가늠할 수 없는 일생 한 번의 군 복무 시절을 알차게 보내면서 마음의 밭을 제대로 일구고 몸 건강히 전역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