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 전, 더위에 허덕이기 시작하던 7월이었습니다. 서울 성곽길 트래킹 얘기만 듣고 사전지식도 없이 부암동 언저리를 걷다 창의문(彰義門) 앞에 이르러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이곳 분들은 하나같이 이 문을 창의문 대신 자하문(紫霞門)이라 부르더군요. 아마 이 일대의 옛 이름이 자하였을 거라 어림짐작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청운동 골짜기가 개성의 자하동을 닮았다 해 자핫골, 자하동으로 불렸고 그 이름이 문에 옮겨붙은 거였죠. 하지만 얼마 뒤 한 블로그에서 흑백사진 한 장에 담긴 창의문이 오랫동안 숙정문으로 알려졌었다는 글을 접했을 땐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물음표 하나쯤은 누구든 일상 어딘가에 묻은 채 살겠죠? 그러다 그제 문득 다시 이 의문이 떠올랐고 퇴근 후 인터넷 검색 끝에 그 사연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판별의 열쇠는 문루, 성문 위에 얹은 누각이었죠. 창의문은 1741년 영조 때 세운 문루를 지금껏 원형 그대로 이고 있으나 숙정문은 오래도록 무지개 모양 홍예만 덩그러니 있다가 1976년에야 문루를 새로 올렸습니다. 그러니 문루가 또렷하게 얹힌 옛 사진 속 문은 숙정문일 수가 없는 거
거의 10년 전, 더워지기 시작했던 6월 전라북도 남원시의 광한루원에서 촬영한 한 컷입니다. 사전지식도 없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으로 유명한 이곳을 방문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선하네요. 1461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요천 물을 끌어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고 오작교를 놓은 것이 이 연못의 시초로, 훗날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지으며 물 가운데 삼신산 세 섬을 더했다는 얘기는 솔직히 그냥 그랬습니다. 물고기가 사람을 닮을 때 하지만 천상의 은하수를 본떠 만든 이 물에 사람의 얼굴을 닮은 물고기, 이른바 인면어(人面魚)가 살고 있다는 얘기는 귀에 쏙 들어왔죠. 잉어와 향어의 교잡종인 인면어는 양쪽 눈 사이 뼈가 콧대처럼 튀어나와 정면에서 들여다보면 영락없이 사람 얼굴 형상이 떠오른답니다. 이스라엘잉어라고도 불리는 향어는 본래 잉어과에서 갈라져 나온 종이라 잉어와 교잡이 가능하고요. 다만 사람을 닮은 얼굴은 대물림되는 유전 형질이 아니라 우연이 빚은 일회성의 개체변이라서 같은 모습이 2세에게서 다시 나타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죠. 인면어는 하나의 종(種)이 아니라, 자연이 어쩌다 한 번 그려낸 얼굴인 셈입니다. 이
나이가 들수록 피부에 점이 늘어나는 것도 모자라 검버섯까지 보이는 것 같아 이제부터 열심히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까 고민 중입니다. 이번 편의 피사체는 집에 나뒹구는 관련 제품이고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년 만에 새로운 자외선차단 성분 사용을 허용했답니다. 현지 날짜로 이달 9일, 유기 자외선차단 성분인 '베모트리지놀'(bemotrizinol)을 선스크린에 사용 가능한 허용 활성 성분 목록에 넣은 건데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부문 성분 추가는 이번이 처음이라네요. 업계는 이번 조치를 미국 선스크린 시장의 규제 전환점으로 본다니 과연 어떤 파장이 미칠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일반적으로 검은색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을 흡수해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막아주는 만큼 피부가 검은 사람이 하얀 사람보다 자외선 때문에 걸리는 피부암에 강하다고 하죠. 멜라닌 색소가 없는 백색증 환자는 피부암 조기발견을 위해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고요. 그렇습니다. 매년 6월 13일, 오늘은 국제 백색증 인식의 날. 지난 2014년 12월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지정해 이듬해부터 기려온 날로 올해 주제는 'Proudly in my skin(내 피부가 자랑스럽다)'입니다. 백색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지난해를 지금으로부터 아득하게 보내기 전 성산대교에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양 어깨 옆으로 길고 파랗게 펼쳐진 풍경을 배경 삼아 시원스레 도로를 내달리는 택시 안에서 지독하게도 기대를 저버린 한 해를 날리듯 보내려던 심경을 담으려 했었나 봅니다. 아직 남은 이달도 제겐 대체적으로 답답한 흐름이었습니다. 달리는 차 창문을 연 채 바람을 맞으며 머릿속까지 환기를 하고 싶네요. 이처럼 달리는 그 자체의 용도로 인간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하는 자동차가 며칠 전, 용도에 맞지 않게 쓰인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에서 50대 남성 A씨가 약 1년간 교제하던 여성 B씨를 자신의 차량에 태운 뒤 내리지 못하게 한 혐의로 구속됐죠. B씨가 이별을 통보한 것이 발단이었고요. A씨는 B씨의 직장 근처에서 차에 태운 뒤 협박하며 내리지 못하게 했고 B씨 동생의 신고로 노원역 인근을 지나다가 25분 만에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16일 A씨를 스토킹 처벌법 위반, 감금,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했죠. 달리는 차는 속도가 붙을수록 더욱 견고한 감옥이 됩니다. 감정이 닳아 갈라지고 생각이 달라 틀어진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차를 달
직전 '짜사이'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지 못했지만 유사 분야(?)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들의 얘기를 했었죠. 이어지는 이번 타이어 편에서는 더욱 편한 읽을거리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연예인들을 살피려고 합니다. 지난 1971년, 열두 살 소년 피터 오스트럼(Peter Ostrum)은 영화 '초콜릿 공장(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에서 찰리 버킷 역을 맡았습니다. 진 와일더(Gene Wilder)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이후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고전이 됐죠. 촬영이 끝나고 제작사는 오스트럼에게 3편 출연을 제안했습니다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준 말을 돌보다 만난 수의사의 모습에 반한 것이 계기였고요. 코넬대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뉴욕주 라우빌에서 40년간 수의사로 일하다 2023년 은퇴했습니다. 3개월마다 들어오는 영화 로열티는 약 10달러였다고 하니 저 같은 소시민들이 보기엔 영화에 나오는 골든 티켓을 그냥 버린 거나 마찬가지겠죠.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모두가 증오했던 조프리 바라테온. 그 역할 덕에 확실한 인지도를 쌓은 배우 잭 글리슨(Jack Gleeson)은
문득 거실에 있는 전신거울이 눈에 띄어 찍었습니다. 그저 비치는 모습을 담기만 할 뿐 거울 그 자체가 담긴 적은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모든 것을 반사해 비추는 피사체라니 이색적이기도 하고요. 이번 편에서는 전체를 비추며 예전과 다른 내 모습을 돌아보고 회상에 잠기게 하는 전신거울처럼 시대의 흔적을 사명에 새긴 기업들의 과거를 살피려 합니다. 기업에 있어 전신거울 역할을 하는 건 어쩌면 바로 옛 이름이 아닐까요? 지금은 알파벳 두세 글자로 줄어든 대기업 이름들이 태동할 때는 짧지만 친절한 설명과도 같았거든요. 단출했던 과거, 성장으로 흘러간 역사 오늘은 5월 9일이라 이 날짜부터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76년 전 바로 이날, 서울 용산구 갈월동 소재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라는 작은 업체에서 사이다 한 병이 세상에 나왔죠. 지난 1949년 12월 성(姓)이 모두 다른 7명의 주주가 국산 사이다를 만들자는 의지를 모아 설립한 회사의 첫 작품이 칠성사이다입니다. 당초 일곱 주주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데서 칠성(七姓)이라 했다가 북두칠성처럼 번영하자는 뜻을 담아 칠성(七星)으로 바꿨다네요. 이후 동방청량음료는 칠성음료공업, 칠성한미음료
동네 뒷골목인지 작은 길가인지 버려진 타이어를 무심코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본디 검은색에 쉴 틈 없이 닳아 거무튀튀 지친 외관에 그래도 원형이라고 아무 장식 없이 구르다가 쓸모를 다해 쓰레기 더미에서 나뒹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네요. 매일매일 지쳐도 살리고 살기 위해 쉼 없이 굴러야 하는 우리 인생과 닮았다 싶었습니다. 어제 가볍게 술잔을 기울인 영향이 남았는지 아직까지 감상적인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절대 아닙니다 닳으면 갈아 끼우고, 펑크가 나면 때우고, 그래도 안 되면 새로 바꿔서라도 움직여야 어디에든, 어디로든 향할 수 있으니까요. 업무 추진을 위해 잦은 이동을 감수해야 하는 건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민희(남양주갑) 국회의원의 업무용 차량 타이어에 쇠젓가락이 박혀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이 있었죠. 지난달 6일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의정활동 차량을 이튿날 운행하던 중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TPMS)이 켜졌고, 카센터 점검 과정에서 한쪽 끝이 뾰족하게 갈린 15㎝ 길이의 쇠젓가락이 타이어에 박힌 것을 발견했답니다. 의원실 측은 고의 훼손 가능성을 제기
갑자기 무생채가 먹고 싶어 무를 꺼내 자르다가 상념에 잠겼습니다. 막상 저지르고 보니 하기 귀찮아져서 그런 건 아닙니다 동그란 영(0)의 모습을 한 무(無)라니… 너무나도 단편적인 사색이지만 간만에 멍하니 맘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죠. 실은 조금 귀찮기도 해서 결국 자른 무는 생채 대신 라면에 넣어 시원하게 먹었습니다 유럽 최대 음악 축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는 'Nul Points(널 포인트)'라 불리는 저주가 있습니다. 참가국 어디에서도 단 1점의 표도 받지 못하는 0점, 무득표의 굴욕이죠. 1962년 벨기에가 처음 이 불명예를 떠안은 이래 본선 무대에서 37곡에 0점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단연 '0점의 제왕'은 노르웨이인데 역대 본선 꼴찌 12회, 널 포인트 4회로 오스트리아와 함께 공동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죠. 그중에서도 1978년 파리 대회, 얀 타이겐(Jahn Teigen)이 부른 'Mil etter mil(끝없는 길)'은 전설입니다. 현행 12점 투표 시스템 도입 이후 최초의 완벽한 0점이었던 이 곡은 귀국 직후 노르웨이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약 20주간 차트에 머물렀죠. 같은 해 발매된 앨범 제목은 아예 'This Year's Lo
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던 지난해 여름 어느 무렵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찍은 무궁화입니다. 이른 아침에 피어 저녁에 오므라들고, 다음 날 또 새 봉오리가 열리는 무궁화는 하나의 꽃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여름 내내 나무 전체가 꽃을 달죠. 꽃송이 하나하나의 수명은 하루인지라 '영원히 피는 꽃'이라는 의미의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아무려면 어떤가요. 하나가 지면 하나가 피어 나무 전체는 여름 내내 꽃을 놓지 않으니 영원무궁 겨레의 얼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국화라는 지위에 다함이 없지 않을까요? 법적으로 지정된 국화가 아니라는 논란 외에도 원산지, 진딧물 이슈 등이 있지만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다함이 없는 꽃의 이름을 가진 무궁화호가 4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지난 1977년 새마을호와 통일호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등열차라는 명칭으로 신설된 후 1984년 열차 등급 개편 때 재명명을 거쳐 무궁화호가 된 이 열차의 역사는 1949년 시작됐죠. 당시 호남선 서부해방자호(西部解放者號)가 무궁화호로 개명한 것이 최초였고 한국전쟁 탓에 사라졌다가 35년 만에 부활한 이 열차는 도입 당시 에어컨과 식당차를
이젠 어른이 다 된 큰 아이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유롭던 몇 해 전 중학교 겨울방학 때 잠시 타던 스노보드입니다. 신문지에 싸여 보일러실에 방치된 와중에도 잊히고 싶지 않았다는 듯 제 빛깔을 내는 모습을 보니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국경을 초월해 이목을 모은 여고생 스노보더 최가온 선수가 식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최가온은 부상 악재를 디딘 채 자신의 우상 클로이 김(미국)을 앞에 두고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이로 물었죠. 1, 2차 시기에서 잇따라 넘어지며 절망적 상황까지 몰렸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서 90.25점을 뽑아내 88.00점의 클로이 김에 앞서는 역전극을 펼쳤습니다. 더욱이 2008년 11월생인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에서 세웠던 하프파이프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도 약 7개월 앞당긴 17세 3개월의 나이로 새 역사를 썼고요.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사실 이름만 귀에 익은 스노보드는 동계올림픽 종목 자체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죠. 그나마 1996년에 데뷔해 큰 인기를 끌었던 혼성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