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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두 지붕 한 가족'의 사연…어디에선 검붉은 초콜릿 색깔

올해 밸런타인데이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일본 모 제과업체의 상술에 기인한 행사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연인들에게 설레는 감정을 안기는 날이었으니 이래저래 큰 기대를 했던 분들도 많으셨을 겁니다. 

 

연인들에겐 달콤했을 2월14일이지만 하필 이날은 일제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날이라 밸런타인데이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꽤 계시겠죠. 또 지구상 어느 지역에서는 고통뿐이었던 과거를 기리는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는 초콜릿 색깔보다 더 진한 검붉은 핏빛이 자욱했을 테죠. 

 

1349년 2월14일, 당시 독일에 속한 지역이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유대인이 학살당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던 시기에 흑사병 확산의 근원이 유대인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졌던 거죠.

 

1923년 9월1일 발생한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이 방화하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수많은 우리 핏줄이 유명을 달리한 쓰린 역사가 곧장 떠오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프랑스 땅인 스트라스부르가 저 때에는 왜 독일 차지였을까요?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문명과 독일 문명의 교차하는 곳으로 지명은 독일어의 길(Straße)과 도시(Burg)를 합친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에서 유래했으니 원활한 교통망이 장점인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17세기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도시였던 스트라스부르는 1681년 프랑스 루이 14세가 기습을 감행해 점령한 이래 1697년 레이스베이크 조약으로 프랑스령이 됐습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손에 넣었던 곳인 만큼 프랑스와 독일 영토분쟁이 거듭됐고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힘을 보탠 연합국이 승리하며 동맹국 주축 독일은 스트라스부르를 프랑스에 완전히 내주게 된 거죠.

 

그래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곳 거주민들 거의 다 독일어 방언을 사용할 정도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대적인 프랑스어 교육이 이어져 현재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주민들도 많답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