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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빈 수레가 남기는 소리들

 

하늘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물가 때문에 고개가 더욱 경직되는 겨울입니다. 1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가격정보를 보면, 설 명절을 앞두고 사과와 돼지고기 등 주요 농축수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랐답니다.

 

한숨을 내쉬며 장을 보고 귀가하는 길에 빈 수레를 끄는 동네 노인들을 마주쳤는데 폐지도 얼마 담지 못한 채 그늘진 골목을 서성이는 모습을 보니 유독 가슴이 시리네요.

 

2024년 보건복지부 전수조사 기준, 전국 폐지수집 노인은 1만4831명. 평균 연령 78.1세인 이들이 일주일에 엿새를 일해 버는 폐지 수입은 월 15만9000원에 불과합니다. 요란하지 않게 비싼 고물로 가득 찬 수레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무 무거우면 끌기 힘드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지만요.

 

갑자기 분위기에 좀 어긋나는 얘기지만 사실 아예 빈 것보다는 깡통이나 페트병, 돌멩이 등 작은 물체를 조금 실은 수레가 더 요란스럽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은 '수레가 빌수록 요란하다' 정도로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요? 네. 저 T 맞습니다.

 

영미권에도 'Empty vessels make the most noise'라는 유사 속담이 있습니다. 빈 그릇이 가장 큰 소음을 낸다는 이 속담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더 큰소리로 제 자랑을 하거나 허세를 부린다'는 의미입니다.

 


빈 그릇의 자신감


귀가해서는 이 속담이 딱 떠오르는 기사를 하나 봤습니다. 현지 날짜로 이달 7일 뉴욕포스트,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국의 신경과학자 재러드 코니 호바스 박사가 의회에서 "Z세대가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세대"라고 제언했다는 내용이었죠.

 

하버드대와 멜버른대 등에서 강의해온 호바스 박사의 연구대로라면, 1997년부터 2010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가 주의력, 기억력, 읽기, 계산 능력, 지능지수(IQ) 등 거의 모든 인지 측정에서 이전 세대보다 못한 성적을 냈다고 합니다.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화면만 들여다보며 자라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진단한 호바스 박사는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할수록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빈 머릿속이 만든 자신감의 허상을 꼬집었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죠?

 


레몬즙이 도출한 쑥스러운 인지 편향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심리학적 인지 편향을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일컫습니다. 1999년 코넬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가 실험을 통해 제안한 이론이죠.

 

이 실험은 황당한 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1995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대낮에 은행 두 곳을 턴 맥아더 휠러라는 남성이 체포된 이유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에 얼굴이 고스란히 찍혔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레몬즙을 얼굴에 바르면 보안 카메라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다네요. 물론 정신감정 결과는 정상이었고요. 이 사건을 접한 더닝 교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이후 코넬대 학부생 45명을 대상으로 논리적 사고력, 문법, 유머 감각 등을 평가한 결과, 하위 25%에 해당하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성적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확연했으나 상위권 참가자들은 오히려 낮춰 잡았죠. 비어가는 인지 능력의 빈자리를 근거 없는 비대함이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찰스 다윈은 일찍이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갖게 한다"고 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빈 그릇이 큰 소음을 내듯, 채워지지 않은 머릿속 역시 가장 크게 울리는 게 아닐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무지를 인정할 때 들리는 '배움의 소음'은 우리 사회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소리 중 하나일 겁니다.

 

다만 겨울 거리에서 수레를 끄시는 어르신들의 수레는 값진 것들로 가득 차 소음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플러스 생활정보

 

-인지 능력 퇴보를 막고 근거 없는 자신감 대신 '진짜 실력'을 채우는 세 가지 일상 습관

 

·숏폼 영상이나 요약본을 1분 봤다면, 관련 글이나 책을 3분 동안 정독하기.
·오늘 배운 것이나 읽은 기사의 핵심을 메모지 한 장에 3문장으로 요약하기.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하기 전에 "내 가설은 이런데, 다른 의견은 어때?"라고 질문 던지기.

 

(출처: 존 플라벨 '메타인지 이론', 만프레드 스피처 '디지털 치매', 데이비드 더닝 & 저스틴 크루거 '미숙함과 그에 대한 인식 불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