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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밥통 같다'는 욕이지만 밥솥이라면…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은 롯데손해보험과 쿠쿠전자의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쿠쿠전자의 3525만 원 배상을 내용으로 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전기밥솥의 정상 사용 과정의 밥솥 내부 발화인 만큼 합리적 안정성과 객관적인 성능이 결여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고요. 그러면서 출고 10년 이상 경과한 상품이라는 점을 들어 제조업체 책임을 70%로 제한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경 전기밥솥 취사 후 보온 전환까지 확인하고 외출에 나선 소비자의 집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의 판결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밥솥, 거기다가 국내 전기밥솥 시장점유율 최상위 업체가 엮인 재판이었던지라 세간의 관심도가 높았습니다. 

 

치욕스런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1년에 전시였던 일본에서 전기를 이용한 자동 취사기계가 처음 나온 이래 1952년 일본 전기기기업체 도시바는 자동 전기밥솥, 1965년 생활가전업체 조지루시는 보온밥솥을 만들었죠. 

 

보온병 기술을 따와 단순 보온기능만 있던 이 제품은 1970년 성능 개선을 거쳐 보온유지기능을 갖추게 됐고 여기 자극받은 미쓰비시전기는 1972년, 취사와 동시에 보온까지 가능한 전기보온밥솥을 내놓습니다. 2년이 더 지나 1974년 조지루시는 코끼리 로고로 유명한 전기보온밥솥을 출시하며 타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요.

 

 

우리나라 주요 가전업체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1965년 금성(지금 LG전자), 1972년 한일전기, 1974년 마마밥솥이 유명했던 길평전기(지금 쿠첸)도 타도 조지루시를 외치며 전기밥솥 생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제품의 장점을 찾지 못한 소비자들이 조지루시 전기밥솥의 선풍적인 인기를 만들던 와중에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1983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부산지부 노래교실에 참여한 주부 17명이 일본 단체 여행을 다녀오며 코끼리 밥통 등을 잔뜩 사왔고 아사히신문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경찰 수사 끝에 일본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 간부 2명은 구속, 여행자 1명은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들어 입건됐고 반입물품 중 카메라 외 20종 303만 원어치는 세관 유치로 사건이 마무리됐고요. 

 

이후 사건과 관련한 전반사항을 보고받은 전두환은 경제과학담당 비서관에게 ‘밥통 같은 X들이 밥통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주제에 일제 밥통을 사서 들어오는 여자들을 욕한다’며 반 년 내로 고품질의 전기밥솥을 만들라고 지시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런 일과는 별개로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 70%가량인 쿠쿠를 위시한 우리나라 전기압력밥솥의 기술력과 인기는 과거 조지루시에 앞서는 수준인데요. 1990년대 후반 일본 제품과의 품질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후 성능별로 차등을 둔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며 특히나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필수 구매품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중국어 음성지원은 물론 중국인 인기 관광지에 대형 매장까지 꾸린 쿠쿠전자의 면세점 매출은 지난 7월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92.6%, 판매량은 400%나 부풀었다고 하네요.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