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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순살과 폭설, 한겨울의 비극 '니커보커 참사'

올 겨울은 제가 느끼기에 전국 곳곳에 눈이 많이 내린 듯합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고요. 바로 어제만 해도 폭설로 출입이 전면 통제됐던 한라산 탐방로를 일부 개방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겐 하얀 설국을 보여주는 눈이 어떤 이들은 암흑의 지옥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1922년 오늘,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눈 때문에 큰 사고가 났는데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곳의 니커보커 극장(KnickerBocker Theater)이 무너져 98명이 사망하고 133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였습니다. 

 

다수의 극장을 가졌던 해리 크랜달이 평소 신뢰하던 건축가 레지나드 W. 기어에게 기존과 다른 디자인의 극장을 주문하면서 탄생한 니커보커 극장은 금, 상아, 석회석 벽돌, 비단 등으로 호화롭게 만든 무성영화 전용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때인 만큼 철근을 구하는 일이 용이치 않아 결국 설계와 다른 경량철근을 사용해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1917년 10월13일 개관한 극장이 큰 인기를 얻자 해리 크랜달은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하기 위해 발코니 부근에 관객석을 억지로 추가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여기서 지지대 설치 과정을 넘겨버린 거죠.

 

이렇게 영업을 이어가던 중 1922년 1월28일 워싱턴 D.C.에 최대 5m 가까운 폭설이 쏟아져 역사상 최대 강설량을 기록했고 이날 니커보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300여 명의 관객들은 60cm 두께의 눈을 감당하지 못한 지붕 붕괴로 참변을 당하게 됩니다.

 

워싱턴 D.C. 역사상 최악의 사고라는 이 극장 붕괴와 관련해 9명이 조사를 받아 레지나드를 포함한 5명이 살인 혐의로 기소됩니다. 그러나 4명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레지나드에게도 무겁지 않은 처벌이 내려졌으나 사고 이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다른 건축가를 고용해 니커보커 극장 자리에 새 극장을 차렸던 해리 크랜달 역시 죄책감과 악화한 경제상황에 허덕이다가 레지나드와 같은 선택을 했답니다. 어느덧 100년의 시간이 흐른 재작년에는 니커보커 극장 붕괴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100주기 추모행사도 열렸고요.

 

 

우리나라도 지난해 지붕 붕괴사고로 어수선했죠. 작년 4월29일 밤 11시30분께 인천광역시 서구 원당동의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1~2층 지붕층이 연쇄 붕괴한 사고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입주 전인 데다가 늦은 시간대라 인명피해가 없었지 만약 작업이 이뤄지는 시간대였다면 떠올리기도 힘들 정도의 사고였을 거라는 게 이 사고를 진단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고요. 

 

당시 입주 예정자들은 시공사인 GS건설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컨소시엄이 사고사실을 외부에 밝히지 않고 은폐하려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 사고는 발생 이튿날 공사현장 인근 고층 아파트 주민이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세간에 알려졌거든요.

 

문제의 아파트는 상부 슬라브 하중을 지탱하는 보 없이 수직하중에 상대적 취약점이 있는 무량판 구조로 기본에 충실하게 시공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부실할 경우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둥 상부에 드롭패널(지지판) 대신 전단보강근을 설치해 슬라브에서 내려오는 힘을 곳곳으로 나누는 방식의 보유특허가 있는 LH였지만 제자리에 있어야 할 전단보강근은 존재하지 않았죠. 
 
지난해 7월5일,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가 내놓은 사고조사 결과를 보면 사고 원인은 ▲전단보강근 미설치 ▲붕괴구간 콘크리트 강도 부족 ▲추가 하중 측정 미흡 등입니다. 전단강도가 부족한 기둥 11개소에 전단보강근이 있었다면 사고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애초에 이 아파트의 브랜드명은 '자이'가 아니라 LH의 새 공공분양주택 브랜드 '안단테'지만  LH보다 지명도에서 앞선 탓에 GS건설의 대표 브랜드명인 자이가 '순살자이'라는 오명까지 갖게 됐습니다. 

 

뼈 없는 순살치킨에 빗댄 순살자이 외에 대충짓자이, 공동묘자이, 하자이 등 브랜드 가치를 갉아먹는 오명들이 줄줄이 나오며 웃음거리가 됐죠. 공교롭게도 이 사고 이후 아파트 부실공사와 관련한 기사들이 연달아 쏟아지기도 했고요.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