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 금융] 정기검사에서 '매운맛'을 예고한 금융감독원(금감원)이 기존 밝혀진 우리금융 손태승 전(前)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350억 원 외에 380억 원의 부당대출을 추가 적발했다. 또 지난 5년간 우리은행에서 2300억 원이 넘는 부당대출도 발견됐다. 이에 금감원은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임직원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추가 발견…임종룡 회장 임기서 '집중'
4일 금감원은 '2024년 금융지주·은행 정기 검사'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 이복현 원장은 "대규모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아 금융사의 기본적인 윤리의식과 역량을 의심받고 있다"며 "부실한 내부통제는 특정 금융사만의 문제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임이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작년 금감원이 조사를 통해 밝힌 우리은행 부당대출은 101건이며 금액은 2334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30억 원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에서 발생했다. 앞서 지난해 8월 금감원은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 350억 원이라고 발표했지만, 후속 검사 과정에서 380억 원이 더 드러난 것.
특히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은 손 전 회장 임기 때 279억 원이었지만, 현 임종룡 회장 임기에서 약 451억 원이 집행됐다. 현재 손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부당대출 중 338억 원이 부실대출로 분류됐고 남은 328억 원도 향후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우리금융 부당대출 금액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금감원 박충현 부원장보는 "사전 수시 검사 때는 친인척 위주로 검사를 했지만, 정기 검사에서는 범위를 더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에서 부당대출이 계속 발생한 요인으로 우리은행 전현직 임직원들의 대출심사·사후관리 소홀을 꼽았다. 전직 우리은행 부행장을 비롯해 은행 전현직 임직원 27명이 여신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1604억 원의 부당대출이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부실화된 대출은 1229억 원(76.6%)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제 식구 감싸기 문화' 탓이 크다고 비판했다. 손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있을 당시 우리은행은 여신 관련 징계 기준을 다른 은행보다 크게 완화했는데, 이 기준은 현재까지 바뀌지 않았다. 더불어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실을 알았음에도 금융당국에 5개월가량 알리지 않았다.
이 외에도 우리은행이 계열사 우리금융에프앤아이에 대출을 시행하며 고위험 사업을 지원한 점도 거론됐다. 부실채권(NPL) 투자사 우리금융에프앤아이는 자사가 지배하는 특수목적회사(SPC)의 NPL 후순위 채권을 담보로 우리은행에 3500억 원을 빌렸다. 이후 다시 이 대출금으로 SPC NPL을 사며 자산 규모를 불릴 수 있었는데, 금감원은 이 행위가 금융지주회사법을 회피한 편법 사업이라고 진단했다.
또 우리은행 파생상품 딜러가 작년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급락 당시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을 왜곡해 숨긴 일도 수면 위에 올라왔다. 이 딜러가 숨긴 손실은 1000억 원 규모다.
◇우리금융 '동양·ABL생명' M&A 문제 수면 위…인수 무산 가능성↑
금감원은 이번 검사 발표에서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 과정에서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금융 내규를 보면 M&A 추진 시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 사전 심의를 먼저 연 다음 사전 심의 내용을 이사회 의사 결정에 반영해야 하지만, 임종룡 회장은 리스크위원회 개최 전 이사회에 동양·ABL생명 인수 안건을 상정했다.
또 동양·ABL생명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 당시 리스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개최했다. 이는 이미 인수를 결정하고 위원회와 이사회를 형식적으로 개최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동양·ABL생명 지분 100%를 보유한 중국 다자보험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에 '금융당국의 자회사 편입 불허 시 계약금을 몰취(沒取)한다'는 조항을 기재했다. 당국이 인수를 허가하지 않을 때 계약금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금융은 체결 당시 계약금 약 1550억 원을 낸 바 있다.
이복현 원장은 "우리금융은 해당 조항을 계약서에 넣은 것을 이사회 공식 석상에서 논의하지 않았다"며 "이사회가 주요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등 본연의 기능인 경영진 견제·감시가 제한됐다"고 첨언했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동양·ABL생명 인수 무산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국의 M&A 승인 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와 자회사 등 경영실태평가에서 종합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이어야 승인받을 수 있는데, 직전 검사에서 2등급이었던 우리금융 평가가 하향 조정될 수 있기 때문. 이와 관련해 박 부위원장보는 "현재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산출하기 위한 자료를 취합 중"이라며 "가능하면 관련 제재, 검사와 분리해서 빨리, 최대한 빨리 경영실태평가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기 더해 금감원은 경영실태평가에 반영되는 우리금융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작년 3분기 기준 11.96%로 당국 권고치 12%보다 낮다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더욱이 작년 4분기 환율이 치솟으면서 CET1은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사 인수가 물 건너가면 임 회장의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우리금융은 지난 2013년 우리아비바생명(現 DGB생명)을 매각한 뒤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보험사를 갖고 있지 않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우리금융 누적 당기순이익에서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94.9%로 타 금융지주 대비 은행 수익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이런 이유로 임 회장은 지난 2023년 취임부터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강조했다.
우리금융은 지난 16일 금융당국에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이번 검사 결과가 심사에 반영될 전망이다. 심사가 시작되면 금융위원회(금융위)는 2개월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박 부위원장보는 "최종적으로 우리금융 자회사 편입여 부는 금융위 소관"이라며 "금감원은 우리 역할만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