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을 옷들을 꺼내며 괜스레 기분 좋게 바라보던 제 모습이 아직 기억에 선한데 가을날은 뭐가 그리 급한지 올해도 흔적 같은 여운만 남기며 스쳐지나려고만 합니다. 길고도 지루했던 지난여름은 우리에게 어떤 시련과 보상을 안겼는지 이제 막 되짚던 참이라서 벌써 스며드는 겨울기운이 못내 야속합니다. 하지만 올여름의 이슈들을 몇 가지 살피다 보니 제가 떠올렸던 지루한 여름은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고통의 기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을 숙연하게 하네요. 최근 바르셀로나 글로벌보건연구소(ISGlobal)의 조사 결과와 의학 저널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의 학술 논문을 보면 지난해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유럽 32개국에서 6만2775명이 더위 탓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남유럽에서 사망자의 3분의 2가 나온 와중에 노인 인구 비율이 높고 더위가 잦았던 이탈리아가 1만9000여 명의 최다 사망자를 기록했는데, 열사병은 물론 심장마비 등 기존 건강문제에 악영향인 더위를 직접사인으로 보는 일은 드물어 정확한 통계 파악은 어렵다네요. 질병관리청의 '2025년 여름철(5월 15일~9월 25일)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최종 운영 결과 자료를 통해 올해 우리나라 상황도 함께 살펴보니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29명으로 전년의 34명 대비 감소했답니다. 온열질환 사망자의 60대 이상 비율은 62.1%로 고령층의 취약성이 확연한 가운데 온열질환자 수 자체는 50대에서 19.4%를 기록해 최다였고요. 이 같은 수치들을 살피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직접사인은 어떻게 밝히는 거지?' 직접사인(直接死因, direct cause of death)은 최종적으로 생명을 앗아간 바로 그 원인입니다. 선행사인에 기인해 사망에 직접적으로 이르게 한 구체적인 몸의 손상이나 병의 상태를 의미하는 거죠. 선행사인(先行死因, underlying cause of death)은 사망을 초래하게 된 최초의 근원적인 질병, 사고, 손상을 뜻합니다. 교통사고가 선행사인이라면 사고로 발생한 뇌출혈이 직접사인이죠. 심장마비나 호흡정지는 사망의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므로 직접사인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비롯한 법의학 기관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과정들을 거쳐 직접사인을 명확하게 밝히죠.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죽음의 흔적을 쫓는 법의학자들의 추적 과정을 5단계로 알아봤습니다. ◇외부 관찰 및 부검 부검은 사인을 밝히는 가장 기본이자 핵심 단계는 외부 관찰로 시신의 겉모습을 철저히 살펴 상처의 깊이, 방향, 생활반응(생존 당시 생긴 상처에 나타나는 조직 반응)을 분석하죠. 또 시반(피멍), 시강(근육 굳음), 체온 변화를 측정해 사망 시각을 추산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합니다. 시신을 해부해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내부 장기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내부 관찰은 심장, 폐, 뇌 등 주요 장기를 적출한 후 육안으로 손상 여부나 질병의 흔적을 찾고요. ◇미세조직 검사 육안 부검에서 놓친 미세한 변화를 관찰하는 미세조직 검사는 장기 조직을 채취해 현미경 검사로 세포 손상 여부, 혈관 막힘, 미세 출혈 등을 파악합니다. 단순 사후 변화가 아니라 사망 직전 실제로 특정 질병이 진행 중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특정 단백질이나 효소를 검출하는 고급 기법도 활용한다고 하네요. ◇약독물 및 화학 검사 사망 원인으로 독극물이나 약물 과다복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필수 과정인 약독물 및 화학 검사는 혈액, 소변, 위 내용물 등에서 마약, 수면제, 알코올 성분 등을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단순 복용인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치사량 농도였는지를 따져 사인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방사선 검사 및 가상 부검 총상, 추락사, 교통사고처럼 손상이 복잡하거나 숨겨져 있을 때 효과적인 방사선 검사 및 가상 부검은 X선이나 CT(computed tomography, 전산화 단층촬영),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 등의 기법이 활약합니다.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 골절, 두개골 내부 손상, 총알이나 파편의 위치 등을 알게 되는 거죠. 최근에는 가상부검(virtopsy) 기법이 발달해 실제 해부 전 3차원 영상으로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도 하고요. ◇법곤충학으로 보조적 시간 추정 시신의 부패가 많이 진행돼 다른 지표들이 불분명하다면 법곤충학 전문가가 나설 시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시신에 번식하는 구더기나 파리 유충의 성장 단계를 보고 사망 후 경과 시간을 계산하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법의관을 중심으로 법독성학자, 법방사선학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해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주변 상황 및 병력 등과 엮어 최종 사인을 확정하는 겁니다. 이렇듯 법의학자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탐구의 시작입니다. 누군가의 최후를 붙드는 이들의 집요함은, 결국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삶에 집착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짚는 일은 생의 존엄을 지키는 또 다른 방식인 거죠.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앎?] 죽음의 진실, 법의관이 밝히는 사망의 최종 고리](//www.issueedico.co.kr/data/cache/public/photos/20251044/art_17619128843914_d279ab_90x60_c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