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간만에 생 아몬드를 사서 볶았습니다. 따끈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그리운 날이었죠. 생 아몬드는 청산가리 냄새가 나고 독성물질이 있어 날로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이 독성물질은 살구, 복숭아, 은행, 매실 등 핵과류 과일의 씨앗이 함유한 청산 화합물(사이안 배당체)로 아몬드에서 처음 발견해 이같이 명명했다고 하죠. 아몬드(almond)'는 그리스어 ‘아미그달라(amygdala)’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고요. 아미그달린 그 자체에는 독성이 없지만 장내 효소활동으로 시안화수소를 만드는데 이것이 우리가 아는 청산가리 성분입니다. 악당조직의 약물 탓에 고등학생에서 어린 아이가 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추리만화 등을 보면 목숨을 잃은 피해자를 살피다가 생 아몬드 냄새가 난다며 청산가리에 의한 타살을 추측하는 내용이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인류의 40%가량은 생 아몬드에서 나는 청산가리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도처에 널린 식용 아몬드에도 극소량의 아미그달린이 들어있으나 50kg 이상 섭취해야 반수치사량에 이르는 만큼 생으로 먹어도 무방하고요. 아몬드를 생것이 아니라 구워서 파는 이유는 아미그달린 제거가 아니라 풍미 개선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다만 임산부나 모유 수유 중인 경우는 혹시라도 신생아에게 미칠지 모를 영향을 감안해 구운 아몬드를 먹는 게 안전하고요. 건강한 일반 성인도 아몬드의 기름성분과 칼로리를 고려해 하루 스무 알 정도만 먹는 게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아몬드와 청산가리를 언급하니 마침 30여 년 전 오늘, 세간에 알려진 사건 하나가 떠오르네요. 1997년 7월에 공작선, 반잠수정을 타고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해안으로 침투한 이래 10월27일, 울산에서 체포된 대한민국 남파 공작조 최정남, 강연정의 부부간첩 사건, 혹시 아시나요? 이들이 유명한 이유는 희극을 방불케 한 허술함 때문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당시 해안 침투 후 통영에서는 버스 요금을 낸 후 잔돈 꺼내는 방법을 몰라 운전기사 옆에 한참을 서있고 여의도 잠입 시엔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메밀국수 먹는 법을 몰라 간장소스를 국수에 붓다가 바지를 적시기도 했답니다. 또한 여성용 생리용품이 필요했지만 아기 기저귀를 구입하고 대한민국 말투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둘이 멍하게 있던 적도 많았다네요. 특히 이들은 포섭 대상이던 재야 단체 간부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며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 간부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지금 국가정보원)의 공작으로 의심하면서 부부를 신고해 덜미가 잡혔습니다. 이 사건은 정부의 관련 상황 파악 후 같은 해 11월20일 여러 언론매체에서 보도했으나 한보사태를 위시한 외환위기 이슈에 묻혔죠. 당시 안기부는 심문 전 몸수색으로 신체 곳곳에 숨긴 자살용 독약 앰플을 여러 개 찾아냈지만 여 수사관과 화장실에 간 강연정은 신체 은밀한 부위에 숨겼던 앰플을 순식간에 꺼내 입에서 터뜨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찾아낸 앰플 끝에는 꺼내기 용이하도록 실이 달려있었지만 이 앰플만 실이 끊어진 상태였다죠. 미리 앰플을 삼켰다가 대변을 본 후 찾아내 입에서 터뜨렸다는 얘기도 있으나 둘 중 무엇이 사실인지는 취재로 파악하기가 힘드네요. 남편 최정남은 전향 후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북한 정보 분석업무를 담당 중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의 의지를 담은 이름의 아들 최남혁 군은 북한에 남아 고아로 자랐을 테니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네요. 이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에서는 내시경을 전공하고 임상경험이 있는 내과 의사를 임기제 직원으로 채용 중이랍니다. 꼭 내과 의사만 뽑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치과, 정신과, 영상의학과 등 각 분야 적절히 선별 채용하고요.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