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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지주 무작위 앨범 소개] Ethereal Shroud 'Trisagion'

[악덕 지주(극히 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열아홉 번째는 2013년 영국 와이트 섬(Isle of Wight)의 해안도시 라이드(Ryde)에서 고고한 어둠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낸 Joe Hawker(조 하커)의 1인 프로젝트 Ethereal Shroud(이서리얼 슈라우드)의 'Trisagion(트리사기온: 세 번 거룩한)'.

 

2013년 10월 첫 데모 발매 후 2015년 2월 정규 1집 'They Became the Falling Ash'로 저온숙성한 검은 이스트 같은 장르적 이미지를 굳힌 조 하커에게 이서리얼 슈라우드는 음악적 비전 그 자체입니다.

 

조 하커는 이 원맨밴드에서 보컬, 기타, 작곡, 작사, 편곡 등 음악 제작의 주된 분야를 홀로 담당하면서 일반 뮤지션들과 달리 자신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는 신비주의적 익명성을 유지하죠. 다소 고립된 환경에서 자란 까닭인지 그의 음악적 주제인 고립감, 우울함, 광활함을 자신의 음악에 담아 감정에 기반을 둔 철학 공유를 제시합니다.

 

이 감정들은 개인적 트라우마의 자극제 역할을 하며 탐욕으로 무너지는 세상에 대한 분노, 반파시즘 등 비판적이고 내성(內省)적인 주제와 직결되고요. 자신의 온전한 감정을 훼손 없이 고스란히 표현하고자 이 솔로 프로젝트를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애트모스페릭·디프레시브 블랙, 퓨너럴 둠 메탈의 장르적 경계를 헤치는 Trisagion 앨범의 발매일은 2021년 12월 10일로 앨범의 완성도를 한계치까지 높이고자 기존 작업방식에 변화를 줬는데요.

 

게스트 보컬 섀넌 그리브스(Shannon Greaves) 외에도 드러머 존 커(John Kerr)를 두고 리처드 스펜서(Richard Spencer)에게 베이스와 비올라를 맡기며 세션들과 함께 서정적인 면에서 블랙 메탈이 구현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앨범 제목 Trisagion은 그리스어 Τρισάγιον에서 차용한 것으로 동방 정교회에서 사용되는 '세 번 거룩한(Holy God, Holy Mighty, Holy Immortal, have mercy on us)'이라는 의미의 성가(聖歌)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종교적 단어를 제목으로 채택했으면서도 세상의 불의가 야기하는 내면의 증오와 절망을 건드리는 이 앨범은 그림자의 찬송가(讚頌歌)인 셈이죠.

 

어둠 안에서 사색적인 휴식을 취하길 원한다면 본 앨범이 잡아끄는 깊은 기저로 침잠해도 후회 없을 겁니다. 치유와 희망을 찾는 복잡한 여정을 블랙 메탈에 새겨 총 재생시간 64분 15초, 세 곡에 채운 Trisagion 수록 트랙 전체 살피면서 이번 편 마침표 찍겠습니다.

 

 

앨범 내에서 27분 47초로 가장 긴 첫 번째 트랙 'Chasmal Fires'는 팀파니와 오르간, 플루트로 장엄하지만 불안정한 서사를 전개하며 제목처럼 '심연의 불'을 서서히 밝힙니다. 극단적으로 길고 반복적인 리프 사이를 섀넌 그리브스의 맑은 보컬이 차분하게 메우며 듣는 이에게 심연을 떠오르게 하죠.

 

자신을 비난하는 사회에 대한 증오를 격렬하게 폭발시킨 이 곡은 리드 기타의 선율을 비올라가 이어받는 것으로 앨범 전체 분위기를 짐작케 하며 총 재생시간 64분 15초라는 시간적 구애(拘礙)보다 단 세 곡뿐이라는 아쉬움을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킬링트랙이고요.

 

어둠에 맞서는 봉기의 의지를 세운 두 번째 곡 'Discarnate'는 1번 곡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청각을 파고듭니다. 통상적인 둠 메탈의 늪 같은 잡아끌기와 블랙 메탈의 폭풍 같은 몰아치기가 교차하지만, 밝은 정서를 전달하듯 곡 전체에서 뚜렷한 음악적 색채를 드러내죠. 긴장감이 높은 트랙으로 잦은 템포 변화와 활발한 구성은 '육체를 벗어난다'는 곡 제목을 제대로 나타냅니다.

 

서사적 결론을 짓는 마지막 트랙 'Astral Mariner'는 몽환적인 장엄함이 더욱 두드러지는 곡으로 리처드 스펜서의 비올라가 슬픈 종말을 예고하는 가운데 길게 퍼지는 조 하커의 스크리밍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해방감을 선사하죠.

 

풍부한 신시사이저 레이어가 템포를 안정적으로 잡아주며 '별 세계의 선원'이라는 제목과 같이 상실을 넘어선 평온을 안겨 유종이 거두려는 아름다움을 책임집니다.

 

Chasmal Fires           27:47

 

 

 


Discarnate           13:54

 

 

 


Astral Mariner           22:34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